▲우리 집에서는 최신형 시스템 에어컨보다 십 년 된 선풍기가 훨씬 바쁘다
이준수
우리 부부는 2014년 결혼 이후 수년간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공부와 실천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지구 단위로 사고를 확장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것들이 얼마나 지구 환경에 유해한가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 교육용 '핑크퐁 잉글리시 타이거+펜' 세트를 중고나라에서 구하는 건 괜찮은 선택이다. 반면 신발은 새 제품으로 구입하고, 너무 피곤한 날은 플라스틱 포장재가 무진장 쏟아지는 배달음식을 먹기도 한다.
우리는 커피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내려 마신다. 얼마 전 선호하는 '케냐 AA' 품종의 원두를 검색하다가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케냐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일대에 수년간 가뭄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케냐는 심각한 기아 문제를 겪고 있었다.
염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어떤 부족이 소개되었다. 무더위와 먹이 부족으로 염소들이 모두 폐사하자, 뼈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은 한 줌의 나무 열매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나는 차마 '케냐 AA'를 구입할 수 없었다. 동아프리카에 가뭄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대한민국 같은 소위 산업 선진국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은 대표적인 '기후변화 무임승차국'이다. 1인당 탄소배출량과 플라스틱 사용량은 탑 텐을 놓치지 않으면서, 역설적으로 기후변화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다. 먹을 것이 없어 열매로 연명하는 케냐인을 보고 있으면 에어컨을 켜고 싶은 마음이 확 감소한다.
그럼 야간에도 삼십 도를 육박하는 열대야에는 어떻게 대처할까? 앞서 밝혔다시피 폭염 주의보와 폭염 경보가 뜬 날에는 두 시간가량 에어컨을 가동한다. 인버터형 에어컨은 자주 껐다 켜는 것보다, 희망온도를 설정한 후 쭉 틀어 놓는 편이 경제적이다.
두 시간 후 전원을 꺼도 냉기는 한 시간가량 더 유지된다. 열대야가 아닌 한, 밤에는 대개 바깥 기온이 떨어지므로 불을 켜서 요리를 하는 저녁 시간대만 잘 넘겨도 충분히 더위를 넘길 수 있다. 앞뒤로 창문을 열어 맞바람이 드나들게 하고, 생활 동선에 선풍기를 배치하면 꽤 시원하다.
착용하는 의류 차이도 크다. 통기성이 좋고, 접촉 시 냉감을 주며 땀이 금방 마르는 소재의 의류는 체감 더위를 대폭 낮춰준다. 민소매 상의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샤워에도 요령이 있다. 냉수로 몸을 씻으면 당장은 짜릿하지만 오히려 숙면을 방해한다. 지나치게 차가운 물은 혈관과 근육을 수축시켜 내부의 열이 발산되는 것을 막는다. 적당히 미지근한 물이 더 낫다.
더위 대응 기본 원칙을 세워 에어컨 가동을 줄이면 자연스레 전기 요금도 적게 나온다. 4인 가구인 우리 집은 전용 면적 96제곱미터의 아파트이다. 동일 면적 평균보다 약 20% 정도 사용량이 적다. 아파트 관리비 사이트에서 통계를 확인해 보니 지난 6개월간 전기 사용량이 다른 집보다 확연히 적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집돌이, 집순이 라이프 스타일을 감안하면 꾸준히 선방하고 있다.
에어컨이 '최첨단 굴비'가 될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