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그물
오정훈
팀원들은 대부분 축구 경력 2년차로, 이제 초보 딱지를 떼고 한창 물 오른 기량을 발휘 중이었다. 입단 당시에 나는 축구공 두어 번 만져본 게 다였기에 그들이 '하늘같은 대선배님!'처럼 느껴졌다. 하필 또 나이는 내가 제일 많은지. 실력도 체력도 미미한 왕언니는 한동안 팀을 겉돌았다. 웬만하면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는 성향인데도 필드 위에만 서면 자꾸만 어깨가 안으로 굽었다. 잘하는 이들 사이에 있으면 더 빨리 늘 줄 알았는데, 느는 건 눈치뿐이었다.
친구들은 수시로 친선경기를 주선하거나 아마추어 축구 대회에 참가했고, 자꾸만 내게 경기 참여를 독려했다. 그들에게 "알았어, 알았어"라고 대답했지만 경기 참석 투표에 슬그머니 '불참' 버튼을 누르는 날을 반복했다. 출전을 망설인 이유는 하나였다. 나 때문에 질까봐, 친구들 열정에 찬물 끼얹을까봐. 한번은 우리 팀이 친선 경기에서 승리했는데, 혼자 조용히 '이번 승리는 다 내 덕이야, 내가 안 간 덕분이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입단 4개월째. 내 소극적인 태도를 주장이 내내 주시하고 있었나 보다. 별명이 '황소'인 그는 언제나 저돌적인데, 한번은 내게 "언니는 대체 언제까지 도망 다닐 거야!"라며 불같이 몰아쳤다.
"인큐베이터 속 아기처럼 곱게 키워준다며…."
"그런 게 어디 있어! 우리는 다 축구하자마자 경기 나가고 그랬어!"
코너 끝까지 몰아붙이는 황소의 기세에 잔뜩 찌그러진 나는 결국 "알았어, 나갈게. 나가면 되잖아"라는 대답과 함께 울면서 그다음 경기 출전을 감행했다.
개인적으로 경쟁에 굉장히 취약한데, 지난한 사회생활을 거쳐 드디어 지지 않는 법을 터득해왔다. 바로 '그 무엇도 시도하지 않기'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으니까. 보통 순서를 기다릴 때도 상대가 나보다 의욕적이면 물러나 줄 마지막에 서고, 서로 양보하는 분위기일 경우에는 제일 앞으로 나아간다. 곱게 자리를 넘겨주고 남들이 꺼리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내가 시합이라니, 이겨야 한다니, 물러서지 말라니.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누군가가 "첫 게임인데 누가 뭘 바라겠냐. '못하지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겠다'는 마음이면 됐지"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게. 누구도 내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데! 이를 깨달은 순간 온몸에 들어갔던 힘이 스르륵 빠졌고, 이내 경기에 출전할 용기를 얻었다.
어설픔을 인정할 수 있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