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경씨가 운영하는 '문자향'으로 김지하 시인의 시가 적혀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차지하지 않듯 밥은 함께 나눠서 먹어야 하는 것.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함께 먹어야 하는 것 입니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오문수
전두환의 5공 전성기, 김지하는 본업으로 돌아왔지만 이중삼중고에 시달렸다. 부모를 모시고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정의 생활고가 만만치 않았다. 책이 어느 정도 팔렸으나 부정기적인 인세수입으로는 항상 쪼들리기 마련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거처를 찾아왔고, 5공 실세의 출입도 잦았다.
출옥 후 두 해인지 세 해인지 거의 매일같이 둘 혹은 세 패거리 정도씩 벗들, 아우들, 민주화운동 인사나 종교계 사람들, 그리고 대학생 간부들이 몰려와 밥이나 술을 먹고는 돌아갔다. 밥상, 술상을 눈코 뜰 새 없이 날라야 했던 내 아내에게 지금도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몇 사람을 제외하면 그들의 얘기란 다 똑같은 것이었으니, 나더러 반5공운동의 대장을 하라는 것이었고 하다가 또 감옥에 가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첫째, 나와 자기들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 원주와 서울이나 광주의 상황이 판이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셋째, 직업정치가들이 주류였던 박정권 말기와 군 영관급들이 주류를 이룬 5공정권 사이의 병법적(兵法的) 차이를 계산하지 못했다. (주석 7)
민주화 계열 인사들은 5공타도의 전위를, 5공 측에서는 정통성이 없는 자기네 정권의 들러리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전두환의 핵심측근 허문도가 집요하게 접근했다.
그는 그 뒤 서울에서 몇 차례 어떤 루트를 통해서든 나를 초대하여 술을 샀다. 그때마다 그는 내게 협조를 요청해왔고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웃는 내 앞에 또 그때마다 돈이 든 봉투를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일단 받아 넣었다가 3, 4일 뒤에 어떤 루트로든 꼭 되돌려주었다.
똑같았다. 팔을 내밀어 내 허리를 안는 것과 똑같이 돈봉투를 내밀었고 나는 또 슬며시 팔을 풀어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과 똑같이 돈봉투를 되돌려 주었다. 단 한 번 돈이 중간에서 떠버린 적이 있다. (주석 8)
그를 찾는 단체도 많았다. 비중 있는 모임에서 강연 요청도 적지않았다. 유명세를 타고 출판사에서 각종 기획을 하고 그를 초청하였다. 언론사 인터뷰도 잦았다.
1984년 4월 분도출판사에서 "밥이 곧 하늘이다" 라는 명제로 민중생명사상을 담은 <밥 - 김지하 이야기 모음>을 출간했다.
'로터스 상' 수상 연설문을 비롯, <인간 해방의 열쇠인 생명>, <나는 밥이다> 등 7편이 실렸다. 석달 만에 4쇄를 찍을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언론인 출신 문학평론가 김종철은 이 책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밥>은 민족운동가이며 시인인 김지하가 20여 년에 걸친 감옥 안팎의 생활에서 행동하고 독서하고 묵상한 결과를 정리한 '김지하 사상체계'의 결정으로 여겨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지하는 이 책을 통해 생명을 파괴하고 왜곡하는 서구의 이원론적 문화와 사상을 비판하고 생명의 세계관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으며 민중의 개념과 실체를 밝히려고 시도하고 후천개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역동적인 광대예술론을 제시했다. (주석 9)
김종철은 이 글에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김지하는 <밥>에서 민중의 개념과 실체를 규정하는 데 온갖 열의를 쏟고 있는데, 몇 가지 추상적인 접근으로 인해 민중이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에 따르면 민중은 '해방되기를 원하는 자, 생명의 온갖 질곡ㆍ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자, 그리하여 스스로 이웃을 해탈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해탈하는 자'이며, '세상은 이런 것이다 하는 고정된 자기체계가 없어야' 한다." (주석 10)고 지적했다.
주석
7> <회고록(3)>, 70쪽.
8> 앞의 책, 80~81쪽.
9> 김종철, <'밥'을 통해 본 김지하의 생각>, <김지하, 그의 문학과 사상>, 160~161쪽.
10> 앞의 책,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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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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