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가 책 출판에 즈음해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시인 김지하가 책 출판에 즈음해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성식
그가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과제의 하나는 동학의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증산도의 강일순 등 한국 민중사상가와 이들의 활동지역 등을 찾고 학습하는 일이었다. 원주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김지하의 사상기행'이 기획되고 1984년 겨울에 서울에서 출발하였다.
'김지하의 사상기행'에는 당시 많은 논객들이 동행하였지만, 그 중심은 물론 김지하 자신이다. 박정희 치하에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김지하는 감옥 안에서의 치열한 명상과 독서를 통해, 이 원혼으로 가득 차 있는 한반도와 한반도를 넘어선 현실세계의 해방논리로서, '생명운동'을 주창하고, 그 사상적 젖줄을 서세동점의 어둠 속에서 빛처럼 등장했던 최수운과 강증산 (나중에 김일부를 포함)의 주체적 민중사상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러한 개혁사상들이 싹트고 몸을 담았던 어미 자궁인 산천을 더듬어 내려가면서 그 숨결을 직접 느껴보는 한편, 현장 확인과 학습을 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주석 11)
부정기 간행물 형태의 <실천문학>이 계간지로 바뀌면서 창간호를 준비하던 대표 이문구와 주간 송기원이 이 땅의 기층민중의 정신적 주체와 사상의 근원을 찾고자 '사상기행'을 기획한 것이 김지하의 구상과 맞물려 실행된 것이다.
1984년 겨울, 이 보기 드문, 이름조차 생경한 '사상기행'의 출발은 이렇게 하여 이루어졌다. 봉고차를 한 대 대절하여 나중에 영화감독이 된 장선우가 운전기사 겸 사진 촬영을 맡고, 전체 기록 겸 댓거리자로 소설가 이문구가, 김지하 사설의 수강자이자 주석(酒席) 보좌로서 소설가 송기원, 판소리꾼 임진택, 승려 원경 등이 동행을 했다.
'사상기행팀'은 서울 운당여관을 출발하여, 계룡산에서 자칭 땡초라는 괴승 송명초를 만나 일대 논전을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풍수학자 최창조, 판소리 전문가 천이두, 소설가 송기숙ㆍ황석영, 시인 문병란 등과 조우하면서 증산사상의 모태인 모악산을 거쳐, 수운이 칼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는 남원 교룡산성에 이르는 일대 사상적 대장정을 하였다. (주석 12)
김지하의 '사상기행'은 시대적 상황과 그의 족적을 둘러싸고 빚어진 여건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권은 <민중사상의 뿌리를 찾아서>란 부제를 달고, 2권은 <신인류를 꿈꾸며>라는 부제로 1999년에 간행되었다. 2권에는 황지우 시인과의 권두 대담도 실었다.
황지우는 '사상기행'과 관련 다음과 같은 평을 남긴다.
정말로 우주적 호흡을 가진 거대한 사상을 김지하 속에서 만나게 되었지요. 이와 더불어 동도동기라고 하는, 이 민족으로부터 새로운 사상이 세계 속에 되매겨지고 피드백 되어서 확장될 수 있는 거대한 사상의 지표를 탐색해 봤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단초가 어두운 70년대 비좁은 감방에서 폐쇄공포증과 필사적으로 벽 틈에 찾아온 풀씨 하나에서 열렸다는 것. 또 실존적 절망 속에서 필사적인 사색의 결과로서 이러한 생명사상이 나타났다는 것, 또 이런 생명사상이 80년대, 90년대에 우리 남한의 정신 공황 속에서 하나의 이정표로서 자리할 때까지 김지하 시인이 몸소 겪었던 여러 고통들, 특히 오늘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고백되는 10년간의 정신의 아픔 속에서 이런 위대한 사상이 싹텄다는 것을 감명 깊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문학적 감동으로 지켜봤습니다.
아마 김지하의 위대한 사상도 극한의 고통 속에서 섬광으로서 점화된, 성스러운 광기의 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석 13)
주석
11> <김지하 사상기행(1)>, <이 책이 나오기까지>, 12쪽, 실천문학사, 1999.
12> 앞의 책, 12~13쪽.
13> <김지하 사상기행(2)>, 뒷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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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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