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눈빛의 불일치.저는 눈빛을 믿겠습니다. 어머니.
남희한
괜찮다는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들어간 풀의 초입에서 튜브를 두 개 골랐다. 물에 뜨는 용도 외에도 물살로 인한 충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범퍼용 대형 튜브다. 그리고 우물쭈물 서있는 어머니를 튜브에 끼워(?) 드렸다. 팔을 뻗어 거대한 튜브를 잡고 뒤뚱거리며 풀로 향하는 어머니. 무슨 캐릭터 같았고 뜻하지 않게 귀여웠다. 벌써부터 추억이 쌓이기 시작한다.
아내와 먼저 시험 삼아 타보곤 어머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노년의 반열에 들어선 여인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풀에 들어서며 맞이한 첫 번째 물살에 얕은 비명과 함께 어머니 특유의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흐~ 으~ 하하하하하하하!"
혹시라도 힘들어 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 자취를 감춰버렸다. 역시 어머니는 즐길 줄 아는 분이었다.
놀람, 기쁨, 공포, 안도, 아쉬움, 기대.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어머니가 보여 준 리액션은 실로 다양했다. 그 중 저 뒤에서 사람들을 밀어 올리며 다가오는 파도를 보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은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쩜 그리 표정이 리얼하신지, 나는 파도와 함께 긴장도 타버렸다.
파도가 덮치기 전의 긴장된 표정. 파도를 맞닥뜨리고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곧바로 신나 하는 모습. 그리고 금세 지나간 파도에 이내 아쉬워하고 다음 파도를 '티나게' 기다리는 모습은 어머니가 얼마나 몰입하여 즐기고 있는지 알게 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더 돌고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워터파크를 즐기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무서워 별 일 없으면 두문불출했던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깥 생활(?)을 만끽했다. 그리고 나는 부모가 잘 노는 모습이 자식이 잘 노는 모습만큼이나 뿌듯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경험은 신나고 노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하루를 불태우고 피곤해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걱정보다 뿌듯함이 더 크게 밀려 든 것은 아마도 하루 가득 즐거움과 웃음을 채웠기 때문일 테다.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앞으로도 어머니의 거절을 거절해가며 추억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렇게 쌓은 추억이 행복과 가장 가깝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괜찮다'는 말은 가끔 흘려들어도 '괜찮다'.
저녁 식사 내내 하품을 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어머니. 부디 그날 식탁에 뿌려진 어머니의 감탄과 웃음이 오래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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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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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는 괜찮다" 어머니 말, 못들은 척 워터파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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