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으로 소리 나는대로 적고, 따로 설명을 곁들인 메뉴판을 인쇄했다.
김정아
그렇게 해서 메뉴는, 미역국, 녹두전, 잡채를 메인으로 정했다. 생일이니 미역국이 빠지면 서운하고, 서양인들에게는 잡채와 녹두전은 언제나 인기 메뉴다. 특히 녹두전은 예전에 남편 큰딸 생일에도 준비해서 히트를 쳤던 음식이다.
옛날 유행가 가사에서,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고 했지만, 사실 잔칫상에서 녹두전은 빠질 수 없는 메뉴 아니겠는가.
그밖에 겹치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시금치, 숙주, 고사리나물을 얹고, 호박볶음도 추가했다. 김치가 빠지면 섭섭하지만, 우리 집의 김치는 너무 시었기에 적당하지 않아서, 그냥 상추로 겉절이를 추가했다.
디저트도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촉박하게 정해서 여력이 없었기에, 한인 마트에서 한과와 약과를 구매했다.
출발 전에 꼼꼼히 재료를 정리했다. 녹두, 미역, 고사리, 목이버섯, 표고버섯, 한국 쌀 같은 마른 재료부터, 참기름, 간장, 깨, 고춧가루, 새우젓 등의 양념도 챙겨야 했다. 녹두전에 들어갈 소량의 신김치도 꼭 짜서 밀봉 포장했다. 술도 빠질 수 없으니 소주를 한 병 구매했다. 원래 짐을 한 개만 부치려 했는데, 집에서 만든 와인까지 넣으니 무게가 넘어서 가방이 두 개가 되어버렸다. 수저도 마땅치 않을 것 같아서 집에 있는 것을 챙겨 넣었으니 그 무게도 적지 않았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효과를
노바스코샤로 가는 비행기는 밤샘 비행기였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낮잠을 한숨 자고는 저녁 식사 후 잔치상 준비를 시작했다. 한식은 원래 준비가 전날부터 이어지지 않는가! 시누이께 부탁했던 시금치와 양파, 파, 마늘, 숙주나물, 그리고 등심 소고기 한 파운드까지 다 마련된 상태였으니 어려움이 없었다.
저녁때에 고사리를 먼저 삶아서 불려놓고, 고기는 미역국용, 잡채용, 녹두전용으로 삼등분해서 미리 해두었다. 고명용으로 들고 온 말린 대추도 돌려 깎아서 꽃잎 모양으로 잘라두었다. 시누이는 고사리와 미역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며, 전날부터 준비를 한다는 사실에 흥미로워했다.
드디어 생일 아침. 녹두도 불리고, 미역이랑 당면도 불리고, 버섯들도 불렸다. 고사리는 씻어서 손질하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했다. 숙주는 삶아서 반은 나물로, 반은 녹두전용으로 준비, 시금치도 데쳐서 반은 잡채용, 반은 나물로 준비했다. 고사리 역시 다듬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나서, 반은 녹두전용으로 빼두고, 나머지 반은 볶아서 나물로 준비했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게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