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최초로 복숭아 농사... 60년 차 할머니 농부

[여성농민⑤] 길종분 씨갑씨 할머니 이야기

등록 2022.08.05 13:56수정 2022.08.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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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민신문>이 찾은 네 번째 여성농부는 황계동에 사는 길종분(83) 씨갑씨 할머니다. 할머니는 4년 전 토종 뿔시금치를 화성시에 기증했다. 농부들은 할머니의 시금치 씨앗을 받아 로컬푸드 직매장에 판매했다. 지난 7월 27일 화성시민신문은 길종분 씨갑씨 할머니를 만났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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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손하트를 날리는 길종분(83세, 매송면) 씨갑씨 할머니 ⓒ 화성시민신문


수수는 붉은색을 띠는 곡물로 악한 기운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다. 예로부터 돌이나 생일상에 수수로 떡을 짓는 풍습이 전해진다. 토종인 키큰수수는 키가 3미터나 자란다. 농업이 갈수록 기계화‧다수확 중심으로 변하다 보니 어느새 농촌에서 쫀득쫀득 찰진 키큰수수를 만나기 어려워졌다.

경기 화성 매송면 송라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뷰 맛집, 길종분 할머니 댁은 이 동네 '복숭아집'으로 불린다. 할머니는 송라마을 최초로 복숭아 농사를 지었단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고추 농사로 유명한 마을이다. 

"사돈댁 추천으로 시작한 과수 농사가 힘들었지만, 보람은 있었어. 일찍 일어나서 큰 솥에 밥을 짓고 찌개를 끓여놓으면 동네 여자들이 과수원에 모여 종이로 복숭아 봉지를 싸고 열매를 솎아. 아침에 지은 밥을 점심으로 먹고 또 새참으로는 냉면을 만들어. 여자들이 함지에 받아 머리에 이고 온 물을 다 마시고는, 거기에 무른 복숭아를 담아 집으로 지고 갔어. 옛날엔 과일이 참 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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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종분 할머니 텃밭을 지켜주는 나무 ⓒ 화성시민신문


화성씨앗도서관이 준비한 밥모심은 영양 가득한 '연잎밥'이다. 한방재료로 우린 물에 찹쌀을 담가 불렸다가 밤·은행·대추 등 최소한의 재료만 고명으로 얹고, 연잎 본연의 향을 살려 쩌낸다. 곁들인 찬은 질경이 장아찌와 할머니표 오이초무침·오이지·잘 익은 열무김치로 차려졌다. 여름 내음 물씬 나는 밥상이다.

"29세에 송라마을로 시집와서 농사짓고 살았어. 2남 2녀를 낳았지. 첫째 아들이 벌써 올해 60세야. 할아버지(조홍기, 89세)는 지금 낮잠 주무시는 시간이야. 지금은 복숭아는 안 하고 구지뽕을 하지. 오늘도 오전에 고추를 따고 쉬고 있었어. 평소 같으면 지금쯤 나는 마을회관에 있을 시간이야."

할머니는 마을 구성원 모두 다 좋은 이웃들이라고 말한다. 마을회관에서는 해마다 유익한 강의를 준비한다. 지난달에는 대한노인회가 와서 웰다잉 강의를 했고, 마을에서 청와대로 관광을 가자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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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돌보는 할머니의 모습 ⓒ 화성시민신문


"마을에는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이 없어. 한마음으로 잘 모이고 관광도 잘 다니는데, 이제는 허리가 아파서 걷기도 힘드니 구경은 다 갔지(웃음). 10년 전만 해도 설악산 흔들바위 꼭대기까지 다녀왔었는데. 지금은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는 의견이 많아(웃음). 벌써 90세가 넘은 노인이 4명이니까."

송라마을은 화성시 북쪽 끝자락에 있어서 차라리 안산시 반월동, 수원시 오목동 이용이 편하다. 할머니는 작년까지 로컬푸드 직매장에 풋고추·작두콩·구지뽕·아로니아·매실을 출하했다. 막내딸이 수원에 살고 있어서 언제나 할머니의 발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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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에 나란히 새겨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름 ⓒ 화성시민신문




"우리 가까이 사는 막내가 로컬푸드 납품도 다 해줬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출하를 돕고 회사로 복귀하고는 했지. 막내가 우리 발이야. 반월에 있는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아이들은 다 순했어. 시골 아이들은 다 순하지. 동네 아이들은 주로 비봉이나 반월에 있는 학교에 다녔지."

길종분 할머니는 아직도 감나무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수원에 나간다.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감나무까지 걸어가서 주차를 한 후 돌아올 때는 짐을 싣고 전망좋은 복숭아집 언덕을 오른다. 할머니는 지금도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툇마루에서 자녀들이 어디쯤 오는지 기다린다. 키큰수수가 토종 농부를 기다렸던 것처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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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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