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임하기 위해 오른쪽 공격 자리에 섰다. 이날은 노란색 조끼를 입었다.
이지은
공을 골대에 얼마만큼 많이 넣는지 가리는 운동을 취미로 삼은 주제에 '경쟁이 무섭다'니 듣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초반에는 축구를 일종의 체력단련 수단으로 여겼다. 경쟁과 쟁취의 운동이라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모든 건 그저 내 사정일 뿐이고, 보통 축구하는 사람들은 게임하기 위해 모인다. 축구교실에 가도, FC 훈련에서도, 친구들과의 공놀이에서도 꼭 마지막에는 각자 다른 색 조끼를 나누어 입고 상대를 마주 보며 필드 안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곤 한다.
보통 초보들은 공만 보고 달리기에 모두가 한 공간에 우르르 모여 서로의 발을 차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난다. 초반에는 그들의 호기로움에 겁을 먹고 혼자 멀찍이 떨어졌다. 언젠가 뒷걸음질 치는 내게 코치님이 "숨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라고 소리쳤다. 그 말이 딱 맞다. 나는 필드 안에서도 열심히 도망쳤다. 기가 막히게 잘 숨어 다녔는데 어떻게 보셨대.
패스도 마찬가지였다. 날아오는 공을 잘 잡은 뒤에 우리 편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달려드는 수비만 보면 사색이 되어 받자마자 내팽개쳤다. 가뜩이나 기초도 부족한데 아무렇게나 던지니 공이 계속 상대편에게 넘어가거나 라인 밖으로 빠져나갔고, 이후로는 더 자신이 없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욕심도 못 내서, 빈자리를 찾아 달려 나가면서도 차마 내 편에게 "여기, 여기!"라고 소리쳐 알리지 못하고 조용히 어깨춤에 손을 들어 올렸다가 슬쩍 내렸다. 이런 내 모습을 매의 눈으로 집어내는 코치님은 늘 "자신감 있게, 자신감 있게 해요!"라고 소리 지르고, 나는 속으로 '아, 제발 코치님. 내게 관심 좀 가지지 마요'라며 울었다.
경기장에서 좀처럼 주눅 들지 않는 요다에게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대학 축구 동아리 출신인 그는 "저는 지는 경기를 하도 많이 해봐서 그런지 별로 안 떨리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다. 지려고, 질 줄 알면서도 경기에 임한다니. 내가 감히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를 더듬어보느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매번 경쟁 앞에서 꽁지 빠지게 도망만 다니던 나와 달리 요다는 자신의 필드에서 나름의 싸움을 벌이며 패배마저 기꺼이 감내하는 단단한 친구였다.
경기에서 안전하게 지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