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등단한 딸이 너무 대견하다는 최인순 함초장.
최미향
-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자녀분께서 시력장애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특별한 교육이 있으신지요?
"딸을 임신했습니다. 제 몸도 약했을 뿐만 아니라 산속에서의 삶이 척박하고 힘들어서인지 7개월도 안 돼서 조산했습니다.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고 하더군요. 인큐베이터에서 아이를 꺼내 달라고 했습니다. 죽여도 내가 죽이고 살려도 내가 살리겠다고요.
제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떻게 살릴까.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지킬까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주사는 커녕 약을 먹어도 나을 기미가 없던 아이가, 아니 우유조차도 먹지 못하던 아이가 모유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 너는 살겠구나'
당시 병원에서는 '집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키면 감염이 돼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들기름으로 아이의 온몸을 닦아줬습니다. 한 생명을 살린다는 것.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게 그렇게 힘든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내려면 내 아이에게 물고기를 먹여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겠구나. 어차피 이것은 너와의 싸움이다. 너를 살릴 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딸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강하게 키웠습니다. 주위에서는 저를 '팥쥐엄마'라고 하더군요. 괘념치 않았습니다. 팥쥐엄마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내 딸이 세상 중심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뭣이 됐던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그런 딸이 어려움 속에서도 글을 참 잘 씁니다.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싶어요. 글은 치유기도 하잖아요. 처음에는 아이도 '엄마 왜 사람들이 내 시를 안 알아줄까? 난 왜 등단을 못 할까?'라고 고민하더군요. 저는 말했습니다. '난 너의 시가 굉장하다고 본다. 대작이 한 번 나올 거야. 엄마는 꼭 믿고 있다.'
그러던 중 '시인수첩'에 등단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많은 출판사 대표님들이 제 딸의 시를 알아봐 주셨습니다. 9월 중순이면 드디어 딸아이의 첫 시집이 나와요. 내 아이가 내는 첫 시집인 만큼 자신의 삶 속에서 빚어낸 시어들이 사람들에게 따뜻한 울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