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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운전만 38년... "명절에 근무해도 신납니다"

[인터뷰] ‘예산교통’ 운전기사 박환수씨 "우리 있어야 사회 굴러가"

등록 2022.09.09 11:29수정 2022.09.0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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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입사해 38년 동안 운전대를 잡고 있는 박환수씨가 승객을 위해 룸미러를 보며 문을 열어주고 있다. 그는 재직기간 절반 이상은 추석명절에 쉬지 못했다고 한다. ⓒ <무한정보> 황동환


보송보송한 가을이 슬며시 기지개를 켜자 어느덧 추석 명절이 코앞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 말처럼, 추석은 우리에게 풍성하고 넉넉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공기처럼, 없어선 안 될 이들


우리가 명절을 맞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사이, 누군가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 추석을 잘 보낼 수 있는 건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품이 그리워도 현장을 지켜야 하는 의료진, 경찰관, 소방관, 버스운전기사 등등 명절연휴 근무자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모두 공공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충남 예산지역 농어촌버스 '예산교통'에서 서른여덟번째 추석을 맞는 최고참 운전기사 박환수(69)씨는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추석에도 가족 대신 주민의 발을 선택했다. 

그는 "추석이나 설 명절 당일엔 가급적 쉬려고 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38년 재직기간 중 절반 이상의 추석을 운전석에서 보내야 했다"며 "명절에도 누군가는 버스를 운행해야 한다. 쉴 수 있는 기사들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대를 하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으면 신이 나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기분 좋게 일 한다"고 웃었다.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는 "공무원들만 공인인가? 우리도 공인으로 생각한다. 주민의 발이지 않느냐?"며 "어린이부터 노약자까지 손수 안전하게 집에까지 실어 나르고 모시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힘줘 말했다. 명절근무인데도 그를 신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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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모아놓은 월급통장. 20여 년 전 1994년 1일 임금이 4만 1940원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1/4 수준이다. 박씨가 다니는 운행코스. ⓒ <무한정보> 황동환


8월 31일 박씨가 운전하는 버스에 올랐다. 여느 때와 같이 올 추석에도 운전대를 잡고 있을 그의 상황이 궁금했다. 이날 아침 7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대흥 하탄방리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차고지에서 예산터미널까지 45분 동안 첫 번째 운행을 마치고 10분 휴식 후 곧바로 두 번째 운행에 나섰다. 그에 따르면 운전기사의 하루평균 운행횟수는 5~6회다. 가장 많을 때가 7회다.

박씨는 예산읍-응봉-삽교-용동-고덕-마교 등 군내 전역을 돌고, 10시 35분 차고지로 회차한 후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렇게 1시간 10분을 쉬고 세 번째 운행을 시작했다. 오후엔 다시 세 번의 운행이 예정돼 있다. 막차 운행 종료시간인 오후 8시 50분이 그의 퇴근 시간이다. 

한적한 시골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몰리는 오전 8시를 전후한 시간대에 승객이 가장 많다. 이 시간을 지나면 3~4명이 전부다. 승객 없이 빈차로 이동하는 구간도 많다. 특히 시골길이 그렇다.

농촌지역 주민들에겐 시장, 병원, 은행, 학교 등을 향해 집을 나설 때 농어촌버스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하루 3~4회 운행하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시간에 맞춰 하루 일정을 짠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박씨의 시선은 승차 중인 손님의 동선을 향한다. "손님이 타기 좋고 내리기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 승객이 승차하려던 순간 버스카드를 정류장 앞 도로에 떨어뜨렸다. 박씨는 즉시 속도를 줄여 원래 정차하려던 곳보다 앞에서 버스를 멈춰 세웠다.

신례원 간양리가 고향인 그는 지금까지 예산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예산교통 입사 전에는 충남방적에서 7년간 일했다. 1985년 예산교통 입사 당시부터 운전을 천직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그때는 손님이 많았다. 시골에서 자고 나오다보면 학생이고 일반인이고 승객들이 많아 다음 차 타라고 말할 정도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군민이 있어 38년 무탈하게 살아"

카드 대신 현찰로 버스요금을 지불하던 때, 그는 100원 혹은 10원 적게 내려고 하는 손님과 실랑이를 벌일 땐 힘들었지만, 어르신들 짐 실어주고, 정류장 의자에 돈지갑을 깔고 앉아 있다가 깜박하고 승차한 손님을 위해 다시 후진해 지갑을 챙겨줬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운행 중에 손님들과 살갑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버스는 대개 그 시간에 타는 사람들만 타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 안다. 때로는 집 앞에 내려 주기도 했다"라며 농어촌버스 승객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를 전했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버스요금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에 따르면 1981년 버스요금이 일반인이 90원에 학생이 65원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 일반 140원, 학생 100원 △2000년 일반 650원, 학생 520원 △2010년 일반 1100원, 학생 880원 △2020년~현재 일반 1500원, 학생 1200원으로 올랐다.

요즘엔 100원 단위로 요금이 인상되지만, 예전엔 10원 단위였다. 그것도 2년에 한번씩 올랐다. 그땐 그랬다. 1981년 버스 운전기사의 한 달 봉급이 15만 원(관리직 8만 4000원) 정도였다. 당시 인근 지역에선 버스기사의 임금이 제일 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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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운전하는 소형버스 앞에서 운행을 준비하는 박환수씨. ⓒ <무한정보> 황동환


박씨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버스 종착지 마을마다 숙소가 있었다. 지금처럼 빈 차로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막차 종착지 마을에서 자고 그 다음날 출발하는 방식이다. 회사가 버스가 들어가는 마을 이장과 협의해 사랑방을 정해 기사 숙소로 활용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체국 우편낭과 응봉, 대흥, 광시, 삽교, 덕산 신문보급소에 신문을 실어나르기도 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땐 버스 차장도 있었다. 군 단위 농어촌버스의 경우 승객 승하차, 요금수발 등 외에 차량이 고장나면 운전기사를 도와 고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차장은 남자였다고 한다.

그는 버스운전사로서 고충도 있지만 보람도 많았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큰 짐이나 장바구니 등을 들고 타시는데 우리는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저 기다려드리는데, 감사하다면서 내린 후에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기도 한다"면서 "승객들이 타고 내릴 때 건네주는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고 미소를 보였다.

박씨는 "휴식도 없는 명절이지만 지금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한가위 보름달, 온 가족이 편안하고 즐거운 추석이 되길 바란다. 군민이 있어 제가 38년간 무탈하게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버스기사 #추석특집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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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참소리 <무한정보신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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