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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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던 가장 큰 이유는 연휴로 길게 학교를 안 가서였지만, 명절 선물로 집에 먹을 것이 넘쳐났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가공식품부터 신선식품까지, 부모님께서 회사와 지인들로부터 받은 많은 명절 선물 세트들이 집 안에 쌓여 있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시절 추석 때 받은 참치 통조림과 통조림 햄이 식료품 보관장(일종의 팬트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나는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편 '엄마·아빠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구나'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선물의 사회적 의미를 연구한 논문들이 있듯이 직장에서 주는 추석 선물은 단순히 먹는 것, 쓰는 것의 꾸러미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사회의 일부가 돼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며 어느 조직의 일원으로 소속돼 존재의 가치를 인정 받음을 의미한다.
회사에서 준 명절 선물을 들고 귀가하는 직장인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뿌듯한 표정은 어쩌면 선물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회사로부터의 소속감과 사회적 인정, 그리고 고된 노동에 대한 작은 보람을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누는 추석 선물도 선물 자체의 가격이나 실용성이 1차적으로 전달되겠지만 2차적으로 선물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건 본인이 이 사회와 관계 맺고 있음에 대한 안도감과 뿌듯함, 보람일 것이다.
'안 주고 안 받으면 가장 속 편하다'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추석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경제적 제로섬(zero-sum)일 수 있다. 선물을 받으면 고마움과 동시에 나 역시 비슷한 정성으로 답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안도감 같은 정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니 완벽한 제로섬은 아닐 것이다.
꼭 물질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상대가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기에 진심이 담긴 고마움과 안부 인사만으로도 충분하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의 인사가 누군가에게는 큰 안도감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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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렇게 피터팬 내지는 돈키호테를 닮은 낭만주의자가 되었다.그러나 네버랜드는 없다. 출근하는 피터팬으로 살며 책임감 있는 어른과 낭만주의자의 균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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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n년차, 내가 받아본 최고의 추석 선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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