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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내려와 한라산 뛰어서 완주... 그녀의 행복한 이중생활

트레일러닝으로 즐거움 찾은 송지영 성악가... "인천 섬 달리며 아름다움 알리고 싶어요"

등록 2022.09.09 16:14수정 2022.09.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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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인천시립합창단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2019 송도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완주한 당시 사진.
왼쪽은 인천시립합창단 상임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2019 송도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완주한 당시 사진.유창호/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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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닝이란, 산을 달리는 운동입니다. 제가 참가했던 대회는 인왕산-북악산-북한산-도봉산을 연결하는 50km 코스였습니다. 평상시 주말에도 산 3개, 30km 정도 달리고요. 그밖에 러닝 활동과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과 함께 달리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빛나눔이라는 활동인데, 좀 더 널리 알려져서 봉사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은 아름다운 인천 섬들을 달려서 홍보하는 작업을 해보는 것입니다."


달리는 성악가, 송지영(43세) 메조소프라노의 말이다. 인천시립합창단 상임단원으로 활동하는 송지영씨는 주말마다 험준한 산속과 암반 위를 뛰어서 오르내린다. 트레일러닝은 지극히 동적인 운동이다. 정적이고 차분한 메조소프라노와는 도무지 접목이 되지 않는다.

달리기의 시작
 

포장된 도로 위를 달리는 마라톤과는 달리 트레일러닝(trail running)은 산과 숲길 같은 자연 속을 달리는 운동이다. 마라톤이나 등산을 즐기던 사람들이 뭔가 좀 더 액티비티한 체험을 찾으면서 트레일러닝이라는 새로운 종목이 탄생했다고 송지영씨는 설명한다.

"외국에서는 산뿐만 아니라 사막과 계곡을 100마일(160km)씩 달려요. 그러다가 이제는 4박 5일, 5박 6일 동안 250km 이상 달리는 사막 레이스까지 생겼어요."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산악마라톤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점차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련 대회가 많아지는 추세다. 인천에서도 산악마라톤클럽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예전엔 제 자신이 이렇게 달린다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걷는 것도 귀찮을 때가 많잖아요. 그러다가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산에라도 한번 가 볼까? 조금 걸어볼까? 하다가 10km 걷고, 조금 빠르게 달려볼까 하다가 5km 달려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 순간 송지영씨는 '이 기분 뭐야? 너무너무 힘든데 왜 기분이 좋지? 너무너무 힘든 체험을 하고 났는데 왜 상쾌한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달리기에 관한 책을 찾아봤고, <몰입의 즐거움>(미하이 칙센트미하이)도 읽었다. 달리기를 하면 몰입을 하게 되고, 몰입을 하면 뇌가 상쾌해지는, 뇌 청소 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달리기의 즐거움에 더욱 빠져들었고 한 단계 발전해 트레일러닝을 하게 됐다.
 
 송지영씨가 2021년 서울 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해 강북 오산을 달렸다.
송지영씨가 2021년 서울 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해 강북 오산을 달렸다.유희선
 
처음에는 관악산 하나 넘고 나서 '아이고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지금은 관악산 하나로는 너무 심심해 강북오산(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한꺼번에 이어 달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종주하는 데 거의 12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2021년 10월 23일, 서울 국제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인 'SEOUL 100K'에 참가했다. 서울의 숲, 산, 강, 성곽, 도시를 모두 만나는 세계적인 대회로 인왕산에서 시작해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을 지나 서울을 한 바퀴 휘감아서 오는 코스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많이 참가하는 이 대회에 50km를 12시간 만에 완주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 2021년 11월 6일 '트랜스 제주'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해 10시간 달려 완주했다. 트랜스 제주 대회의 50km 코스는 한라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트레일 구간으로 누적 상승고도가 2300m 이상이었다.

달리면서 나누는 또 다른 즐거움

예전에는 자신의 생일날 스스로에게 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곤 했다. 그때만 해도 달리기는 일년에 딱 한번 도전하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트레일러닝을 하고부터는 큰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2년 동안 트레일러닝에 푹 빠져 살았고 앞으로도 이 좋은 걸 계속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 혼자만 좋아할 게 아니라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조금 더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찾아간 곳이 'VMK 한국 시각장애인 마라톤클럽'이었다. 이곳에서 가이드 러너인 '빛나눔 동반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 중에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은 혼자 대회에 나갈 수 없다. 아무리 잘 달리는 체력과 실력이 있어도 옆에 반드시 가이드 러너가 한 명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 찾아가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더니 다들 반겨주더군요. 시각장애인 분들은 목소리와 이름을 꼭 기억해줘요. '성악하는 송지영이에요'라고 딱 한번 인사했는데, 다음에 목소리만 듣고도 저를 알아주시더군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달릴 때는 옆에서 끈을 잡고 손과 발을 반대로 움직인다. 선수의 왼손이 앞으로 나갈 때 동반자는 오른손이 나간다. 발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어색하지만 계속 연습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고,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조금 줄이고, 괜찮으면 조금 더 끌어주면서 한 발 한 발 땅을 차고 나간다.
 
 'VMK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의 빛나눔 동반주자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호흡을 맞추면서 함께 달리고 있다.
'VMK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의 빛나눔 동반주자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호흡을 맞추면서 함께 달리고 있다.김승현
 
인천의 섬에서 노래하며 달리며
 

송지영씨가 인천시립합창단에 입단지원서를 낸 것은 2005년이다. 대학원을 다닐 때, 평소 존경하던 윤학원 선생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어 지원했다. 당시 윤학원 선생은 인천시립합창단 지휘를 맡아 침체돼 있던 인천시립합창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천시립합창단은 시민들을 위한 단체다. 정기연주회와 인천합창대축제와 같은 큰 공연뿐만 아니라 수험생을 위한 음악회도 열고, 초등학교와 아파트, 실버요양원 등을 찾아가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나라 가곡, 외국 가곡, 오페라, 뮤지컬, 영화음악, 팝송, 가요, 트로트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민들이 좋아하는 곡을 골라 함께 즐기며 노래한다.

인천시립합창단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청도, 소청도, 자월도, 신도, 백령도 등 인천 섬을 방문해 공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그때의 기억은 송지영씨에게 큰 보람과 행복으로 남아 있다. 한번은 공연을 마친 다음날,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혼자 바닷가를 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너무 행복한 거예요. '내가 이 새벽에 여기를 이렇게 달리고 있어. 내가 살아 있어. 숨 쉬고 있어'라는 생각에요. 이 행복을 저 혼자만 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인천 섬에는 산도 있고 바다 둘레길도 있잖아요. 이거를 특화시켜 트레일러닝 대회를 섬에서 한다면, 인천 섬의 아름다움도 홍보하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주 작게, 아주 조금씩, 1km 걷기부터
 
 주말이면 트레일러닝 동호인들과 함께 험준한 산 위를 거침없이 달린다. (사진 제공 송지영)
주말이면 트레일러닝 동호인들과 함께 험준한 산 위를 거침없이 달린다. (사진 제공 송지영)아이-뷰
 
섬이든 산이든 자연 속을 뛰어다니는 일이 환상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선뜻 접근하기가 어려운 종목이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부상도 염려되고 체력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송지영씨 역시 트레일러닝은 굉장히 큰 시도였다. 발을 내딛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테두리 안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음악과 노래만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새롭고 좋은 기운들을 만납니다. 운동할 때는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웃으면서 만나고 헤어질 수 있어요. 주말에 운동하고 나면 평일에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요. 회복 탄력성이 강해지는 거예요. 고무줄이 늘어나기만 했다가 어쩌지 못하고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송지영씨는 주말마다 기꺼이 운동복을 입고 산에 오른다. 운동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몸이 건강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큰 행복을 줬다. 주변 동료나 친구, 가족도 더 소중하게,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무엇보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나가는 추진력이 강해졌다.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한다는 목표와 준비는 물론 일상에서도 다음 목표를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달성해 나가는 힘과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운동을 꺼리거나 '내가 그걸 어떻게 해'라고 물러서는 사람에게 송지영씨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주 작게, 아주 조금씩, 1km 걷기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조금씩만 노력하고 조금씩 한 걸음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만 않으면 조금씩 나아가게 되고, 마음이 열립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면서 달리는 거예요. 그런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글 김병선 i-View 객원기자(rainblue108@naver.com)
 
 인천문화예술회관 내 인천시립합창단 연습실에서 만난 송지영 씨. 합창단 연습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내 인천시립합창단 연습실에서 만난 송지영 씨. 합창단 연습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김병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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