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공화국도서출판 전망에서 나온 남기태의 시집이다.
전망
세상을 따뜻하게 데워 줄 큰 그릇, '사랑'
책을 읽거나 또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단어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가장 와 닿는, 자기 안에서 늘 숨 쉬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누군가에게 물으면 어떤 분은 '측은지심', 어떤 분은 '그리움', 또 어떤 분은 '희망', 다른 분은 '겸손', 또 '평화', '책임감' 등등 자기식의 단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러니 어쩌면 그 단어가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고, 세상을 담는 그릇이며, 궁극적인 삶의 지향점이 아닐까 싶어요. 누구나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살길 바라니까요.
시가 사랑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니 남기태 시인의 시에서 측은지심, 그리움, 희망, 겸손, 평화, 책임감 등의 감정들이 보이는데 이는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일 뿐, 똑같은 의미일 거로 생각해요. 그렇게 여든을 바라보는 시인은 살아온 세월을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큰 그릇을 마음속에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그중에서도 '3부 희망공화국'을 읽다 보면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고 오직 한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는데요.
한마음으로 줄을 당겨라
발을 굴려 밀려가고
쇠머리 달려오너라
함성으로 함께하는 희열로
지는 것이 이기는 것
한마음이기 때문이리라
- '영산쇠머리대기' 중에서 발췌
이쪽저쪽 함께 밀려가고 달려와서는 '싸워서 이기자'가 아니라 져도 괜찮다, 아니 지고 이기고가 어디 있는가, 그러니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며 결국 한마음이 되어 모두를 껴안자는, 시인이 그릇에 담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공화국'이란 말 때문에 어쩌면 젊은 혈기로, 사회비판적인,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의 시가 아닐까 했는데요. 막상 읽어보니 나이 많은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할머니, 아버지, 그리운 어머니, 그리고 아내였고, 그들은 우리와 같은 얼굴이란 것을, 시인이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래서 남기태 시인이 가진 그릇은 아마도 따뜻한 죽그릇이 아닐까 해요. 아픈 자식을 위해 끓인 죽이 다 먹을 때까지 식지 말라고 따뜻하게 데워서 담아 준 그릇 말이죠. 그리고 시인은 그 그릇을 제 앞으로도 슬쩍 밀어주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따뜻한 그릇에 담겨 있는 시니까 저도 그 옛날 학창 시절처럼 다시 한번 시를 외워보려 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다가오는 가을을 맞이하며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시면 어떨까요?
골목, 그리운 그 곳엔
가난 굴레 벗고자
되돌아보지도 못한 채 떠나
죄지은 몸 못난 아들로
그리움마저 사치였나니
서럽고 힘들어도 찾을 수 없던
어머니 가슴에 새긴
내 상혼(傷魂)들
깊이 갈무리 하고
어렵고 힘들었으니
이제 쉬어가기로 하자
뛰노는 아이들
정겨운 이름들이
돌담에 얹혀 있고
언제나 기다려 주는
어머님 계시다
희망공화국
남기태 (지은이),
신생(전망),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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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받아 먹었습니다, 마음의 '죽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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