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풍경5원본 사진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방향과 멋대로 휘둘리지 않으려는 나무들의 굳은 결기까지 표현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모자라요.
정혜영
유화는 끊임없는 덧칠로 인한 소멸과 생성이 반복되는 과정. 과연 끝이 있기는 한 것일까. 원본 사진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방향과 멋대로 휘둘리지 않으려는 나무들의 굳은 결기까지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은 욕심이겠지.
유화로 풍경을 그리다보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다. 허허벌판에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멀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풍경의 초반은 영락없이 시린 겨울 풍경이다. 점점 잔디가 푸르러지고 나뭇잎이 풍성하게 올려지면서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넘어간다.
원근감을 살리기 위해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나무와 잎에 끊임없이 색을 덧칠하다 나무 사이에서 비추는 강렬한 햇살을 그려내면 계절은 비로소 한여름의 절정에 이른다.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바람이 잔잔해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녹음(綠陰)의 색은 변할테고, 어느덧 한 잎, 두 잎 다 떨구고 나면 처음의 앙상했던 풍경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자연의 이치는 우리 삶의 여정과 닮았다.
언젠가 지인들과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매년 스승의 날이면 연락을 드리는 은사님이 계신다고 하니 지인들이 크게 반색했다. 학창 시절에는 좋아했던 선생님 한두 분쯤은 계셨던 것 같은데 그분들은 왜 나이가 든 우리에게 존경할 만한 어른으로 남지 못하셨을까. 정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것인지, 나이가 드니 더 이상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조차 각박해진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르신들이 이렇게나 많은 고령화 사회에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어른 한 명 없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픈 일이다. 그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준을 조금 낮춘다면 우리에게도 그런 어른이 생길까.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미술 취미반 레슨 선생님은 내가 못 보는 사진 속 디테일을 어떻게 표현할지 알려주시니 내겐 충분히 스승이시다. 한 분야에서 보낸 오랜 단련의 시간은 그것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흉내내기 힘든 내공으로 차곡차곡 쌓였을 테다.
20년이 넘게 아이들을 만나 오면서 나는 과연 어떤 디테일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겼을까. 교직자로서의 삶에 있어 완성이란 없겠지만, 서서히 디테일을 살피면서 내 삶의 그림을 조화롭게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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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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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만에 완성한 그림, 이게 무슨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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