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훈센 총리 "권좌 물러난 후에도 권력 유지하겠다"

'퇴임 후 새 총리와 장관들의 잘못된 업무와 행동 감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

등록 2022.09.15 09:24수정 2022.09.1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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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당대표에 올라 권력을 유지하겠다고 발언한 훈센총리 지난 13일 오전(현지시각) 씨엠립주에서 열린 2천명 군중집회에 참석한 훈센총리의 모습 ⓒ 훈센총리 공식 페이스북

 
캄보디아 훈센 총리가 최근 지방 군중집회 연설에서 자신이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집권여당을 계속 이끌며, 당대표직을 통해 권력을 유지할 생각임을 밝혔다.

지난 13일(현지시각) 약 2천 명의 군중들과 여러 정부 관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연설에서 총리는 "내가 총리직을 사임한 후에도 나는 캄보디아 인민당 대표로 남을 것"이라며 자신은 "새 총리와 다른 장관들의 업무와 행동을 감시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지 영자신문 <크메르타임스>는 이날 훈센 총리가 집권당의 대표는 장관들뿐만 아니라 신임 총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다만, 총리는 자신의 메시지가 뒤에서 새 총리를 통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집권여당이 총리 후보를 선출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으로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헌법 119조에 따르면, 국왕의 임명을 위한 국회 동의 없이도 과반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총리후보를 지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즉, 당 대표 권한으로도 총리의 해임안도 가결할 수 있다는 확대 해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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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차기 총리후보로 떠오른 훈센총리의 장남 훈 마넷 군사령관이 지난 주 모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훈센총리 공식 페이스북 계정

 
훈센 총리는 같은 날 연설에서 현 캄보디아군(RCA) 사령관인 그의 장남 훈 마넷 중장을 차기 총리로 지명한다는 입장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난 1985년 34살 나이에 권좌에 오른 후 37년째 장기집권 중인 훈센 총리는 지난해 연말 자신의 장남인 훈 마넷 군사령관을 다음 차기 총리로 공식 지목한 바 있다.

이에 125석 전석을 가진 집권여당(CPP)은 물론이고, 각 부처 장관들도 일제히 지지성명을 냈다. 


이처럼 큰아들 훈 마넷 장군을 중심으로 후계구도가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이미 일부 장관들과 주지사직 등 주요 요직들은 아들의 최측근 인사들로 점차 채워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장남이 훈센 총리를 이어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총리의 이 같은 갑작스러운 발언을 한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현지 전문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훈센 총리가 자신이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를 내심 염려하는 것 같다. 자신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순간 여당과 비판세력들이 공세에 나서면서 불안한 정치적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권좌에서 물러난 후 곧바로 당 대표직에 올라 아들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하며, 반대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아들이 차기 총리로서 권력을 잘 유지하고 공고히 다질 수 있도록 뒤에서 돕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훈센 총리는 부자간 권력승계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비판세력들의 반대를 의식한 한 듯, 이날 "훈 마넷이 내 아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아들이다. 그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를 지지할 것임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여 총리는 "진정으로 집권당인 인민당(CPP)과 캄보디아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 새 총리가 되길 응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차기 총리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아들 훈 마넷은 현재 44살로, 다섯 형제 자매 중 첫째다. 미국 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경제학 석, 박사 학위를 받은 최고의 엘리트이기도 하다.

카리스마 넘치고 호탕한 아버지와 달리 장남은 비교적 내성적이고 차분한 편이며, 꼼꼼하면서도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도 높다. 그의 페이스북 계정 팔로워 수는 1백만 명이 넘을 정도다.

최근 들어 삼남인 훈 마니와 형제간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이에 훈센 총리는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두 자식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려 이 같은 소문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직 국회위원이자 수십만 명 전국 회원을 가진 청년연합의 의장을 맡고 있는 삼남 훈 마니는 권력에 욕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수차례 자신이 총리가 되고 싶다는 의견을 외신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혀 자국 내에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그 후 구설에 휘말리며 결국 아버지의 눈밖에 벗어났다.

훈센 총리는 한동안 두 아들을 두고 고심하며 저울질한 끝에 권력욕이 강한 삼남을 제치고, 결국 큰아들인 훈 마넷을 낙점한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캄보디아와 가까운 중국은 훈 마넷보다는 삼남 훈 마니를 내심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친 중국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미국과 영국 등 서구세계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한 경험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이유로 장남인 훈 마넷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캄보디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과 입김이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면, 차기 캄보디아 권력 구도를 둘러싼 미중 간의 보이지 않은 갈등이 촉발될 수도 있다.

한편, 내년 7월 치러지는 총선에서 훈센 총리가 승리할 경우 훈센 총리의 재임 기간은 42년으로 늘어난다. 그는 현존 아시아 최장기 집권 독재자다.

현지 전문가들은 다음 5년간의 임기 도중 훈센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직을 내려놓고, 대신 당 대표에 오를 경우 아들 훈 마넷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 #훈마넷 장군 #캄보디아 권력승계 #캄보디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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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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