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 들어가면 나와 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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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한 바퀴를 돌았는데 탈진할 것만 같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움직이는데 내 몸은 꿈쩍도 않는다. 한참 뒤에서 출발한 사람 손이 내 발 끝에 닿으면 민망해서 벽에 바짝 붙는다. 어떤 사람은 알아서 내 옆을 피해 가기도 하는데 물 속에서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지친 몸보다 의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내 몸짓 때문에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처음이니까 어설픈 게 당연해. 수영 강습은 20년 전 3개월이 전부잖아? 물에 뜨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강습도 안 받고 자유수영을 한다는 건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머릿속에 흐르는 말을 소리로 뱉는다. 옆사람이 들으라듯.
한 포털에서는 어느 날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블로거를 모았다.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블로거들이 대거 인플루언서 딱지를 달았다. 이 추세에 뒤지면 안 될 것 같아 뒤늦게 인플루언서에 지원했다.
"팬 추가 했습니다. 맞팬 해주실 거죠?" 하루에도 수십 개씩 스팸 쪽지가 달려들었다. 피곤했다. 스팸보다 서로 영양가 없이 덩치만 키우며 경쟁하는 행태가 더 불편했다. 인플루언서 선정 일주일도 되지 않아 관련 기능을 모두 닫았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경쟁심 하나로 인플루언서에 달려든 결과다.
SNS에 집 짓고 사는 나는 자연스레 나와 비슷한 무리에 속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적당한 숫자는 필수다. 더 많은 하트와 댓글! 내가 가져오지 못하면 남이 가져간다. 끝없는 무언의 경쟁 속에 나에게 남은 건 무의식적 습관이었다.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 잘해야 한다. 뒤처지면 안된다.' 물 속에서 온 몸을 바둥대다 보니 내 몸에 붙은 경쟁 심리들이 잔뜩 튀어나왔다. 기회만 생기면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내 마음의 찌꺼기들이.
다시 생각한다. '체력을 위해 시작한 수영이다. 대회에 나갈 일은 없다. 남들보다 잘해야 할 이유가 없다. 부끄러울 필요도 없다. 나에겐 오직 하나, 체력 상승이라는 목표가 전부다.' 이렇게 생각하니, 경쟁해야 한다는 마음도 주변의 시선도 걷혔다. 변명마냥 중얼대던 입을 닫고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나와 물만 남는다. 물을 헤쳐가는 동안 내 몸에 닿는 물을 느끼며, 내 몸과 생각을 바라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이의 학원 선택이 난 왜 이렇게 어려울까? 원어민 수업 기회는 얼마 안 남았으니까 놓치기 싫고, 중학교 가면 내신도 중요하다니 꼭 챙겨야겠고, 영어 자신감도 올려 주고 싶은 거네. 한 학원에서 이 모든 걸 할 수가 없으니, 괴롭구나. 이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아이의 자신감이지. 자신감이 있어야 말을 하든 시험을 보든 가능하니까. 제일 중요한 건 그거였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영어 학원 선택 문제로 최근 한 달도 넘게 골머리를 앓았다. 물 속에 머리를 담그고 내내 그 생각에 머물렀다. 그리고 떠오른 건 모두를 다 갖고 싶은 나의 욕심이었다.
평소 내가 알아채지 못한 깊은 마음들은 물 속에서 쉽게 떠오른다. 그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느새 스르르 풀려 물 위에 흩어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영은 적극적 명상,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불리는 활동이라고 한다.
물속에서의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