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고 달콤한 화합의 맛을 내는 짜장면 한 그릇
박은정
평소라면 끼리끼리 각자 흩어지는 점심시간이지만, 이런 날은 다 같이 한 자리에 둘러 앉아 먹는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주로 선택되는 메뉴는 짜장면에 탕수육이다. 몸을 쓰며 땀을 흘린 노동 후의 점심식사로 이만한 게 없다.
출발 전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자리를 예약한다. 도착하자마자 가게 주인이 건네는 작은 종이에 식사 메뉴 하나씩을, 탕수육 대(大) 자를 마지막에 적어 건넨다. 갓 내어 온 노란 단무지와 아삭하고 달달한 양파에 식초를 살짝 뿌리고, 탕수육을 찍어먹을 양념간장을 만들어 둔다. 곧 서비스 찐만두가 식탁 위에 놓인다. 한 입 베어 물자 뜨거운 육즙이 터진다.
곧이어 주문한 짜장이 온다. 겉바(겉은 바삭바삭) 속촉(속이 촉촉한) 계란 프라이를 젓가락으로 살짝 그릇 가장 자리로 옮겨둔다. 채소와 고기, 해물을 잘게 다져 듬뿍 넣고 갓 볶아내어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는 짜장 소스를 노란 윤기가 도는 면 위에 아낌없이 붓는다(그렇다, 이런 날은 간짜장이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벼서' 면에 양념이 충분히 배어들었다 싶을 때 한 젓가락 크게 들고 입으로 가져간다. 입술로 기름기가 번짐과 동시에 짜장 양념의 달짝지근한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짜장면이지만 이 점심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방금 튀겨 바삭바삭한 탕수육을 과일과 채소가 듬뿍 들어간 새콤달콤한 소스에 찍어 함께 먹는 기쁨. 게다가 여럿이 모여 있을 때는 꼭 찍먹파와 부먹파가 갈리는 법이니 나와 취향이 비슷한 직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나와는 다르면서 또 나와 닮은 회사 사람들과 먹는 점심은 특별하다. 한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실감, 공통의 목표가 있다면 함께 힘을 합칠 수도 있다는 기대감, 파티션 바깥으로 걸어 나왔을 때 새로운 점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놀라움.
물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각자의 파티션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내 일은 내 일이고, 네 일은 네 일이 될 것이다. 각자 업무 분장 아래 무관심과 개인주의가 반복해서 끼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또 가능할 것이란 어떤 실체감을 분명히 경험했다.
점심을 먹고 나와 거리를 걷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밀린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신없이 하루는 잘 가는데 한 주는 길게만 느껴진다. 아직 화요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주말까지 아직 한참 남아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화(火)요일이지만, 오늘은 다른 화요일을 보냈다.
뜻이 맞아 사이가 좋은 상태라는 화(和)요일, 화목하게 어울린 화합(和合)의 점심시간이었다. 언젠가 또 다시 같은 목표 아래 뜻을 맞춰 사이좋게 어울릴 화요일을 꿈꾸며 다시 파티션 안으로 돌아간다. 오후를 맞이하는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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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한번은, 이런 짜장면 먹어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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