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저장소에서 찾은 노란각시버섯. 하루 만에 시들어버려 사진을 직접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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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나니 동그란 버섯은 우산모양이 되었다가. 며칠 뒤 세찬 비가 내리니 금세 시들어버렸다. 2주 정도 자리를 비운 동안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다녀간 기분이었다.
내가 기르는 화분에 내가 심지도 않은 샛노란색 독버섯이 자라다니. 꽤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노란각시버섯이 화분이나 온실에서 흔하게 생기는 버섯이라는 것을 배우고 '나는 아직 초보 식집사에 불과하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식물을 기르는 일이 정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늘 제자리에 있고, 물과 햇빛만 적당히, 일정하게 공급해주면 알아서 조금씩 눈에 뜨이지 않게 서서히 자란다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화초를 기르다보면 알게 된다. 식물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얼마나 다양하고, 예상 밖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얼마전, 호박씨를 심어 넝쿨이 꽤 근사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어느날 잎사귀 뒤에 허연 가루같은 것이 하나 둘 덮이기 시작했다. 호박도 몇 개 주렁주렁 달리고 초록색 잎사귀와 호박꽃이 탐스러웠는데, 며칠 사이에 잎이 순식간에 누렇게 뜨고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잎곰팡이병'이라고 하는 질병에 걸리면, 포자가 바람과 공기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금세 전염이 된다고 한다. 자양강장제 음료를 물에 희석해서 뿌려주면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해보았지만 때를 놓쳤는지, 결국 2미터 가까이 되는 호박넝쿨을 모두 잘라내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잘 자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고무나무나 금전수 같은 경우는 별 신경을 안 써도 혼자서 묵묵히 잘 자라주는 고마운 아이들이지만, 몇 달 신경을 안 쓰고 내버려두다보면 걷잡을 수 없이 키가 크고 열심히 새순을 올려주다가 뿌리까지 왕성하게 번식하는 바람에 화분이 깨지는 경우도 있고, 볼품없이 키만 삐죽하게 커버리기도 한다. 가지치기나 분갈이를 열심히 해주며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가며 키워야 보기좋은 화초로 자라는 것이다.
식물은 알아서 혼자 자라지 않는다
2주간의 휴가 기간 동안 수경꽂이를 해놓은 스킨답서스는 물이 말라버려 잎사귀들이 떨어져버렸고, 보라색 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던 라벤더 화분도 꽃이 다 시들어버렸다. 비가 자주 왔다고 해서 나 없이도 잘 버틸 줄 알았는데,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화초를 키우는 일에도 이렇게 책임감이 따른다.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없는 환경이라면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두는 마음가짐도 중요한 것 같다.
좋아하니까, 보기 좋으니까 화초를 자꾸 들인다. 그런데 겉모습만 보고, 정물화처럼 화초를 대하면 좋은 식물집사가 될 수 없다. 화원에서 잘 자라던 화초인데, 판매하시는 분이 하라는 대로 키웠는데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허다하다.
내 집에 오는 순간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이고 습도와 조도와 바람에 따라 아이들은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화초에 따라 쉽게 적응하기도 하지만 잘 안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또, 내가 경험한 독버섯이나 곰팡이포자같은 경우는 미리 대비하고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찾아보고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
또 한번, 화초를 키우는 일이 사람사는 일과 어쩜 이렇게 닮았는지를 깨닫는다. 무탈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신경 쓰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괜찮겠지.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잘 굴러갈거야' 하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 사고에 부딪쳤을 때에는 좋은 판단을 하고 해결책을 찾아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돌려놓는 노련함도 필요하고... 그렇게 보기 좋은 나무를 키워내듯 별일없고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만드는 게 살아가는 일이니까.
그 새 시들어버린 화초도 있었지만,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기도 했고 오렌지 자스민나무는 여전히 별처럼 예쁜 꽃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관심을 기울이고, 애쓰고 노력하며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선물같은 기쁨이, 사랑이, 행복의 순간이 찾아오는 때가 있는 것도 삶이니까. 그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화분에 물을 주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