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천주교인권위원회
책은, 자영업자, 플랫폼 일자리, 기술의 발전과 노동의 관계, 로켓배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으로 본 '공정'의 문제,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 정년·호봉제·주휴수당 등으로 본 한국 노동의 딜레마 등의 주제들을 분석하고 고찰한다. 기자라는 본업을 가진 저자는 기자답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여러 자료와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혐오VS선량한 피해자'라는 구도를 벗어나 깊은 갈증을 풀어나간다.
선악의 구도를 벗어나려는 과정은 꽤나 대담하다. 에둘러 돌아가지 않고, 정면 돌파한다. 여러 사안들에 대한 보수 쪽의 질문도 피하거나 섣불리 공격하지 않는다. 정면 돌파하기 때문에 애써 피하고 싶었던 거대 노조의 모순점도 발견된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이 발바닥에 박힌 아주 작은 가시 같은 느낌으로 읽힐 사람들도 많을 듯하다. 저자는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더 전진할 논쟁을 기대한다. 이 책이 그 논쟁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령,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현대차 노조와 같은 완성차 노조를 보자.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기차 시대는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필요한 부품 수도 대폭 줄어들고, 조립도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이전보다 자동화가 더 진행될 여지가 크다. 자동화가 더 진행되는 만큼 그만큼의 일자리가 줄어든다.
단순히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연기관 부품을 제조해온 국내 1만여 부품사들과 현대차 하청(의 하청)업체들까지 치명타를 입는다. 뿐만 아니라 내연기관 자동차 수리를 하는 자동차 공업사들까지도 영향을 받게 된다(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는 자동차 공업사에서 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중 집단적인 대응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현대차 노조 같은 완성차 노조이다. 이 노조의 대응이 제일 중요하다.
저자는 산업의 대전환을 앞둔 한국의 완성차 노조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청년층이나 부품사 등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한국의 완성차 노조들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꽤나 오래됐다.
보수 언론들은 그들을 '귀족노조'라 부르고,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으로 일삼으며 공격을 하는 판국에 저자의 이러한 의심은 큰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도 남는다. 혹자는 저자에게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냐?'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바로 이런 이분법적인 구도를 벗어나자고 말한다.
저자는 아직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라는 단순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기존 노동법을 넘어 노동을 새로 정의하고, 노동법적 보호 범위를 확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안에서 중요한 지점은 바로 고용보험의 확대이다. 고용보험의 확대는 안정적으로 고용된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점에서 여러 논란과 비판이 야기될 수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가장 안전한 지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취약한 자리에 선 사람에게 내미는 손"이라고 표현한다. 고용보험은 훨씬 강력한 연대를 요구하는 사회보험이라는 것이다. 현재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
1988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최소한의 보호구와 환기시설도 없이 일하다 수은에 중독돼 열다섯 살 노동자 문송면이 사망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제2의, 제3의 문송면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과거가 그대로 현재가 되어있고, 돌아오는 미래는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예상컨대 산업의 대전환을 겪으며 세상은 많이 바뀌겠지만, 노동자들의 상황은 크게 달라져 있을 것 같지 않다.
좀 더 선명한 대안 찾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가능성이 커진다. 저자는 진보의 대안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본다. 그동안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진보의 대안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였지만, 정규직화를 적용받는 사람을 넘어서 '모든 이들을 위한 대안'에는 별 관심이 없었음을 비판한다. 이 역시 논쟁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의견은 아니다.
산업의 대전환을 앞두고 좀 더 진보된 세상의 청사진을 그려야 하는 진보가 조금이라도 더 선명한 채도의 청사진을 그리려면 진보의 대안을 먼저 의심해볼 것을 제안한다. 왜인지 송곳으로 폐부를 찔린 기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자칫 중구난방으로 읽힐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결국 '사회적인 연대감'이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서술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중심에는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인 연대감이란,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세금을 내고 위험이 실현된 사람이 혜택을 받는 것, 그 사람이 낸 보험료로 언젠가 나도 보호 받는 것'(308쪽)을 말한다.
이토록 현실적인 결론이라니. 이토록 논쟁적일 결론이라니. 그러니 함께 읽어보고, 함께 논쟁하고, 함께 길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만큼, 독자들은 더 나눌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전혜원 (지은이),
서해문집,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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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늘 선량한 피해자?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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