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쎄 뭐 다른 질문을 해주시죠."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출근길 문답의 첫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이날 새벽 이준석 전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1년' 추가 징계를 내린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5월 11일부터 진행해 온 '50번째' 출근길 문답의 첫 질문이 '답변 거부'로 끝난 셈. 물론,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입장을 밝히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이와 비슷한 답변을 내놓긴 했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아예 "제가 당무 사항에 대해선 답변한 적이 없잖습니까"라고 기자들을 향해 되물었다. 이준석 전 대표와 관련된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들렸다. 불편한 기색을 담은 대통령의 반문에, 기자들은 다른 질문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오면서 취재진에게 "오늘 출근하면서 보니깐 날이 좀 쌀쌀해졌다. 기자 여러분들도 환절기에 건강 잘 챙기시오"라고 살가운 인사를 건네는 등 '기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또 본격적인 문답 전 모두발언으론 우여곡절 끝에 전날(6일) 성사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전했다. "(기시다 총리와) 같은 내용의 생각을 서로 공유를 하고 한일관계가 빠른 시일 내 과거와 같이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서 기업과 국민들의 교류가 원활해지면 양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는 내용이 주된 골자였다. 뉴욕 순방 중 '약식회담'으로 야당으로부터 '굴욕외교'란 비판을 받았던 만큼, 대통령으로서 신경 써서 알리고 싶은 내용이었을 터.
그런데 모두발언 후 나온 첫 질문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질문이었으니 순간 분위기가 굳어버린 셈이다.
내부총질-비속어 논란, 대통령만 답할 수 있는데 패싱... 왜?
사실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답변을 거부한 건 처음이 아니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 명분을 '소통'으로 삼은 만큼 현안에 대한 질의응답이 취임 직후부터 이어졌고, 윤 대통령은 때때로 답변을 회피하거나 버럭 하면서 불쾌감을 직접 표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사 실패' 지적 때였다. 윤 대통령은 당시 질문에 "전 정권에서 지명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대통령의 답변 태도가 논란이 될 때마다 여야를 막론하고 출근길 문답을 중단하거나 형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됐다. 세심히 관리돼야 할 대통령의 '메시지'가 즉발적인 상황에서 실수를 빚거나, 정책적으로 잘못된 시그널을 외부에 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출근길 문답의 형식이 바뀐 계기는 이런 지적을 수용해서가 아니었다. 지난 7월 2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 대통령과 주고 받았던 텔레그램 메시지를 언론에 노출한 데 따른 후폭풍 탓이 더 컸다. 윤 대통령이 이준석 전 대표를 '내부총질 하던 대표'라고 칭한 사실이 알려진 만큼,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야 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사흘 연속 출근길 문답을 하지 않으면서 '소통이 사라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첫 여름휴가 후 2주 만에 복귀하면서 재개한 출근길 문답(8.8) 때도 '내부총질' 관련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8월 12일 진행된 출근길 문답 땐 '모두발언'이란 형식이 추가됐다. 별다른 형식 변경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 출근 전 취재진에게 "대통령께서 모두발언을 할 예정이다. 질문하기 전에 좀 기다려달라"고 공지하면서 변경된 방법이었다.
출근길 문답에서의 모두발언 추가는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답할 수 있는 기자들의 질문 갯수를 줄이는 효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론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 후 질문의사를 표한 기자 중 누군가를 지목하는 방식이 됐고, 대통령이 답하는 질문 갯수도 최소 1개밖에 안 되는 경우도 생겼다.
특히 윤 대통령의 '질문 패싱' 모습도 이때부터 보다 더 두드러졌다. 9월 초 대통령실 인적쇄신 논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윤 대통령은 손을 들어 질문을 막으면서 "그 얘기는 제가 오늘 언급하지 않겠다. 태풍과 관련된 것만 질문해주십쇼"라고 제지했다. 이밖에도 야당의 김건희 여사 의혹 관련 특별검사법 발의도, 이준석 전 대표의 '결자해지' 언급 등에 대한 질문에도 윤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최근 미국 뉴욕 순방 과정에서 불거진 '비속어 논란'에 대해서도 같은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26일 출근길 문답에서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본인 발언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관련 발언 영상을 처음 보도한 MBC를 문제 삼았다. 사흘 뒤인 9월 29일 출근길 문답 땐 '비속어 논란' 장기화에 대한 유감 표명 여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무실로 향했다.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등을 뜻하는 '소통(疏通)'이란 취지와는 좀 더 멀어진 셈이다.
'소통' 사라지는 출근길 문답... "다른 질문 해주시죠"는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