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변호사 (자료사진)
윤성효
"내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실로 평탄치 않은 기복이 드러나 있다. 인생의 명암을 놓고 말하면 명과 암의 극과 극을 한 몸으로 겪어야 했다. 내 이력서에는 양지도 보이지만, 연보에는 그와는 달리 음지가 짙게 번져 있다. 고백컨대 나는 음지 속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인간적으로 성숙했으며 본색을 키웠고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음지의 체험은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양지였으며, 그래서 나는 나를 키워준 음지에 감사한다."
고 한승헌 변호사가 자서전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표지에 뽑은 '자화상'의 한 대목이다.
사람은 물론 초목들까지도 양지를 향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사와 세상사는 '양지쟁탈전' 이래도 과언이 아닐 터. 해서 인간군상에는 '양지족(陽地族)'과 '해바라기족'이 득세하는 경우가 흔하다. 초목이 햇볕을 향하는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인간 양지족'의 경우는 무슨 현상이라고 할까. 대체 무슨 조화인지, 나무는 음지에서 자란 목재가 더 결이 곱고 단단하다고 한다.
8.15 해방 후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반세기의 정치사는 거칠게 말해 야만의 시대였다. 간판으로 내건 민주공화의 헌정질서는 저들에겐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일 뿐 지키고 보호할 가치가 아니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선출된 집권자 중에는 민주신봉자와 여전히 독재자의 아류 그리고 부패무능한 존재로 갈린다. 우리 헌법의 골격인 민주공화제의 핵심은 권력분립이다. 독재자와 그 아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권력을 휘두른다. 마치 왕조시대의 군주인양 행세한다.
야만의 시대 지식인 그룹은 다양한 존재방식과 가치관이 주어진다. 축약하면 독재자들이 악법과 제도를 만들고 준법을 강요할 때, 순응하는가 거부하는가이다. '악법도 법'이라며 추종하는 무리와 이에 저항하는 소수로 갈린다. 추종에는 양지가, 저항에는 음지가 주어진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는 양지그룹에 속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차지하는데 적합한 직종이다. 변호사와 검사는 흔히 양날의 칼을 든 검투사에 비유되기도 한다. 한쪽은 불의를 베는 칼잡이로, 다른 쪽은 정의를 지키는 보검의 역할이다.
긴 세월 멀리에서 혹은 가까이서 지켜본 고 한승헌 선생은 정의로운 법조인이었다. 젊은시절의 비판정신과 정의감은 연륜과 더불어 또는 타성에 젖어 보수화되기 쉬운 것이 현실인데, 그는 청·장·노가 한결 같았다. 연치는 늘어도 정신은 항상 싱싱한, 그래서 활동과 필력에서 영원한 현역, 영원한 청춘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늙어도 결코 낡지는 않았다.
선생은 심장이 뜨겁고 영혼이 맑은, 우리 사회의 흔치않는 원로였다. 다산 정약용이 "시대를 가슴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글(시)이 아니다"라고 갈파했듯이, 그의 변론과 글에는 뼈가 있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지만, 진실호도나 음풍농월은 찾을 수 없다. 올곧고 강직한 선비 법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