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초등학교에선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로 북적거리던 교실은 휑해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이 시간이 되면 학교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교실엔 선생님과 건강상의 이유로 운동장에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만 남아 있다. 이 시간에 학생들이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다.
아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운동장에서의 놀이 시간에 할애한다. 필자의 경우 1년 6개월간 3학교에서 실습하면서 우천의 이유로 외부로 나갈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학생들이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학생과 교사로서 경험한 한국 초등학교의 쉬는 시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선 쉬는 시간 동안 학교 안은 어떤 때보다 활기가 가득하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과 복도에서 억눌린 에너지를 발산한다. 학습 공간이 놀이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쉬는 시간이 또 다른 학습 시간이 되기도 한다. 교사나 학교에 따라 이 시간을 특색 활동으로 채워 아이들에게 놀이가 아닌 다른 활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과 다른 교사들과의 소통에 비춰봤을 때 한국의 초등학교에선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소극적이다. '운동장에서 노는 것이 금지돼 있지 않은데, 왜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복도, 교실, 운동장의 경계를 허무는 걸까? 어떻게 독일에선 이 시간만 되면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가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 궁금증에 대해 독일 교사로부터 뜻밖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독일의 많은 학교는 아이들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반드시' 운동장에 나가는 것을 의무화했다고 한다. 많은 중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독일의 많은 학교에선 운동장에서의 놀이가 아이들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 이 의무의 이행이 가능한 것은 독일 학교의 감독 체계 때문이다. 학교장은 학교안전사고를 감독한 의무를 가지며 쉬는 시간 동안 운동장에서 학생을 관리/감독할 교사를 배치한다. 감독의 책임을 맡은 교사들은 아이들을 지켜보고, 학교 안으로의 출입을 통제한다.
게다가 관리/감독 교사가 현장에 있을 경우 교사에게 직접적으로 안전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리/감독의 임무가 없는 교사의 경우엔 이 시간을 다음 수업을 준비하거나 휴식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들의 입장에선 관리/감독할 수 있는 교사들이 없는 학교 안이 아이들에게 더욱 위험한 공간인 것이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안전사고의 책임을 교사에게 미루는 관행이 있다. 학교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의 주체가 교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극적인 경우엔 안전사고를 근거로 교육 당국은 교사를 징계하거나 학부모는 교사를 고소하기도 한다. 법적인 조치 이외에도 안전사고로 인한 학부모와의 갈등 해결은 교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이유로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마음껏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사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일이다. 교사가 없는 곳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하위징아는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호모 루덴스)로 규정하며 인간의 삶 자체가 놀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문화는 놀이와 함께 발달했고 인간은 이를 통해 자신의 특징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하는 상상력이 가득한 놀이는 아이들의 내면 활동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놀이가 아동들에게 주는 효과 역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 현장에선 안정상의 이유로 놀이가 제약을 겪고 있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 마음껏 운동장을 뛰어놀 수 있게 하기 위해선 교사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교사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관행이 반복되면 점점 더 아이들과 놀이는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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