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축제에서 펼친 타로 부스타로 부스에서 잠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성희
타로를 함께 배웠던 동네 언니들이 축제에서 타로를 봐 주는 부스를 열자고 했을 때, 아기를 봐야 해서 시간을 약속하기 어렵고, 상황 봐서 참여하겠다고 했다.
아기는 자신들이 돌아가며 봐 줄테니 편하게 오라고 했고, 그 마음에 기대어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가 열리는 공원에 갔다. 언니들은 아침 일찍부터 짐을 챙겨 나와 타로 부스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나는 아기하고 오다가다 잠깐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과 타로카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시지 창에 떠 있는 내 몫으로 보내진 2만5000원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이 돈을 받기가 미안하다고 했더니, "아기 키우면 다 그렇지~ 애도 보고 타로도 보느라 수고 많았어~"라고 답이 왔다. '아기 키우면 다 그렇지'라는 말을 여러 번 되뇌어 보았다. 아기를 키우면서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지금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언니들은 언제나 그랬다. 뭐든 배우러 다니기 좋아하던 내가 셋째를 낳고 집 안에만 있을 때, 동네에서 타로 워크숍을 열고 같이 배우자고 손 내밀어 주었다. 아기를 데리고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워 고민했더니, 먼저 배웠던 언니가 아기 돌보미를 자처하면서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수업을 듣기도 했다.
10년 넘게 아이 키우는 것만 하던 내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낙담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 했던 것도 언니들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간 시간에 함께 모여서 비폭력대화 워크숍을 듣고 책을 읽고 공부했다.
집에서 먼 곳에서 열리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어 할 때, 언니들이 아이들을 봐 줄 테니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 주었다. 아이를 빨리 키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는 대신, 아이를 키우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2만5000원으로 뭘 할까. 책도 사고 싶고, 언니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싶고, 봐두었던 타로 카드를 사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데 한 언니가 다 같이 모여 맛있는 술을 먹으면서 타로를 하자고 했다. 모두가 너무 좋겠다면서, 어서 날짜를 잡자고 하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언니들도 나처럼 고요한 밤에 모여 타로카드로 삶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사실, 찬바람이 불면서 출산과 육아밖에 한 것이 없는데 삼십 대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런데 이미 내 곁에는 사십 대를 살고 있는 언니들이 있었다. 마흔 다섯 살 전에 운전면허증을 따 새로운 발이 생겼다며 좋아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일주일 단식을 해보고 얼마나 좋았는지 얘기하면서 같이 하자는 언니들.
얼마 전에 태권도 1단을 딴 언니는 아들과 함께 대회에 함께 참여하고는 "아주 멋진 경험"이었다고 했다. 언니들의 사십 대에 나의 사십 대를 겹쳐 보면서 어떻게 살지 상상하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겠구나 싶어졌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게 느껴졌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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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삼십 대가 끝난다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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