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권우성
지난 10월 29일 밤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갔던 시민 156명이 압사로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더구나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연관 검색어로 '트라우마'라는 단어도 뜨고 있다. 한 전문가는 트라우마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심리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1만 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민적 트라우마 상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보고자, 지난 3일 심리학자인 김태형 사회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 자녀도 가려던 곳...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 지난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려던 300명 정도 사람들이 압사 사고를 당하는 참사가 일어났어요. 156명이 사망해서 충격을 주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큰 충격을 받았는데, 저희 애들도 이태원에 갈 뻔했기 때문이에요. 첫째는 군대 동기 하나가 이태원 축제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기로 거의 이야기가 되었어요. 근데 다른 한 명이 11월에 시험이 있다고 해서 연기가 됐습니다. 둘째도 친구가 가자고 그랬는데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저희 애들도 그 현장에 있었을 뻔했지요. 이걸 보면서 저는 누구라도 죽을 수 있는 참사였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고,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니까 이번 참사가 인재라는 게 분명한 것 같아요. 8년 전에 세월호를 겪고도 우리가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다시 이런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구나, 참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세월호 참사 뒤 8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 변한 게 없을까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확하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필요한 시스템도 정비해야 했고, 좀 더 넓게 얘기하면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게 실패한 거죠. 그동안 민주당 정부 하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조차 명확하게 되지 않았잖아요. 아직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또다시 이런 참사가 다시 한 번 되풀이되니, 사람들은 8년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같습니다."
- 참사에서 진상 규명 하는 게 얼마만큼 중요한 걸까요?
"진상규명이 안 되면, 일단 애도가 안 돼요. 예를 하나 들어보면,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어떻게 죽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면 애도가 제대로 안 돼요. 애도라는 것이 단순하게 슬픈 감정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여러 가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이 올라오게 되는데 그것들을 표출하는 과정이 애도라고 할 수 있어요. 애도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중한 대상을 상실한 아픔을 치유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진상 규명이 안 되면 감정 처리를 못 합니다. 진상이 명확하지 않으면 감정이 뭉쳐서 마음에서 빠져나가지 않아요."
- 국가에서는 지금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정쟁이 아니라 애도에 집중하자고 하는데요.
"잘못된 거죠. 애도가 언제 가능해지느냐면, 진상 규명에 더해 책임자 처벌, 나아가서 재발 방지 대책이 완전히 마련됐을 때예요. 그걸 통해서 애도가 끝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애도 기간을 정해놓고 '이때까지만 애도하고 그 다음에 진상규명하자'는 건, 전후가 뒤바뀐 거죠."
- 이태원 참사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세월호로 인해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겹쳐서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참사가 터지고 많은 사람이 세월호가 생각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로 인한 상처가 치유가 안 됐단 말이죠. 이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잠복해 있게 되거든요. 그게 이번에 자극이 된 거죠. 어떻게 보면 이 참사만으로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게 아니고 세월호까지 떠올리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재발되어 합쳐지고 있는 거죠.
따라서 정작 이번 참사로부터는 별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 세월호 때 상처가 있었다면,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죠. 결론적으로 세월호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이 다시 자극되고 또 그것과는 무관한 사람들도 이번 참사만으로 상처가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굉장히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국민적 트라우마 호소, 세월호 때의 상처 치유 안 된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