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실로 짠 크로스 백과 수세미
왕언경
얼마 전 한 단톡방에 뜨개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사진을 올린 A는 요즘 오랜만에 갖게 된 여유 시간을 뜨개질로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직접 뜬 거라면서 작고 앙증맞은 핼러윈 호박 모양의 크로셰 액세서리를 보여주었다.
처음 뜬 거라지만 마무리가 꽤 꼼꼼해 보였다. 나 역시 한동안 뜨개질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예쁘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니 왠지 내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뜬 핸드폰과 카드지갑 정도가 들어가는 면실 크로스백 사진을 올려주었다. 어쩐지 A에게는 내가 뜬 소품이 아직은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우와, 뜨개질이 취미셨나 봐요? 잘 뜨셨네요. 저도 이렇게 실용적인 거 뜨고 싶어요."
A가 보기에는 내가 뜬 크로스백이 그럴듯해 보였나 보다. 하지만 이젠 나도 안다. A가 막 뜨개질을 시작한 참이기는 해도 뜨개 소품의 완성도를 알아보는 눈이 생기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을 말이다.
몇 해 전 송년 모임 때의 일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동네 지인들과의 송년 모임에서 손수 만든 작은 아크릴 수세미를 2장씩 선물한 적이 있다. 맛있는 식사와 더 맛깔난 수다를 다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예쁜 종이로 포장한 수세미 꾸러미를 크리스마스 선물 겸 하나씩 건넸다. 비록 한 가지 색상에 이렇다 할 무늬도 없는 어설픈 네모 모양의 수세미였지만, 즐겁게 받아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뿌듯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때 내게서 수세미를 건네받은 지인들의 카톡 대문이 하나 둘 수세미 사진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봐도 앙증맞고 귀여운, 설거지통에 담그기조차 아까울 만큼 예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뜨개질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 떴다. 내가 건넨 무미건조한 수세미에 비하면 어디에 내다 팔아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이 정도는 한다고 뽐을 내는 듯했다.
그때 처음 내가 만든 뜨개 소품이 남에게 내보일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알았다. 이후에도 간단한 숄이나 작은 가방 같은 걸 뜨기는 했지만, 어느 한 곳쯤은 뜨개 책의 그림과 살짝 다른 부분이 반드시 생기곤 했다. 그러다 보니 선뜻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선물로 주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간혹 누군가 내가 만든 뜨개 소품에 관심을 보일성싶으면 언니가 만들어 준 거라고 둘러댔다.
반복되는 데자뷰, 목공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혼 때부터 아이들 장난감 박스나 간단한 선반, 작은 책장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 썼다. 신혼집이 13평짜리 다세대 주택이다 보니 공간이 워낙 좁아서 기성품은 자리를 너무 차지하는 불편함도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지출을 줄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모양이 그럴듯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원하는 크기의 소품을 마음에 드는 재질의 소재로 꾸밀 수 있었기에 사용상의 편리성만큼은 만족도가 좋았다. 목공을 어디서 배운 적은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망치와 톱으로 작은 선반이며 앉은뱅이 의자, 10칸짜리 받아쓰기 공책 하나와 필통 하나가 겨우 올려지는 작은 책상 같은 걸 뚝딱뚝딱 만드시는 모습을 지켜봤을 뿐이다. 아버지에게 못과 망치를 건네드리거나 사포질을 시키면 신나게 문질러댄 것이 전부였지만, 눈으로 다 배웠기에 어려울 건 없었다.
가끔 만나는 지인이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집들이 선물로 뭘 줄까 고민하다가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작은 찻상을 마음에 들어 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그 찻상과 똑같은 찻상을 하나 만들어 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