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친구들 제대로 캠페인’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미디어신문고 상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자유롭다고?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책임지고 있는 업무에 따라서 강제로 정해진다면, 출퇴근 시간이 고정된 것보다도 훨씬 더 종속된 것을 의미한다. 근무일에 노동자의 시간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앞서 드라마 스태프의 경우를 보자면, 기술 스태프는 대체로 촬영 일정에 따라서 일한다. 연출 직군의 경우에는 촬영이 없는 날도 바쁘다. 이는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수개월 단위로 집중하여 촬영하고 끝나면 다른 드라마로 옮겨가는 드라마 촬영과는 다르게, 예능은 길면 수년간 정기적으로 방송이 계속된다. 다만 프로그램의 포맷이나 출연진, 촬영장소 등이 더 패턴화된 방식이다. 한 예능 연출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로 연락해왔다. 노동자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을 물었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고 답하였다.
이미 2020년 청년유니온의 조사로 극한의 장시간 초저임금 노동실태가 드러난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스타가 참여하는방송 일정에 맞춰 준비·정리 시간을 더한 만큼 움직이게 되며, 이는 당연히 하루 8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게다가 퇴근하고도 다음 방송 스타일링을 혼자준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평균 월급은 13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또한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으며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기에,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근로시간 문제가 발생한다.
교통카드 기록으로 출퇴근 시간을 정리하고 업무 지시를 받은 소셜미디어 메시지 등을 함께 제출하여도,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거나 고용관계가 아닌 개인과 개인 간 사적인 약속으로 보고 노동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경력 3년 차인 어시스턴트가 1년 반을 일한 팀에서 괴롭힘으로 인해 퇴사하고 마지막 달 임금을 받고자 하였다. 이 경우 근로시간을 일일이 확인한 뒤 최저임금을 적용하여 계산한 체불 임금 규모가 퇴직금을 포함하여 1600만 원에 달했다.
유연함을 넘어 형태를 잡기 어려운 방송미디어 노동
방송미디어 노동은 너무나도 유연하여 형태조차 잡을 수 없다. 마치 아무 형태나 될 수 있는 '메타몽'(만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캐릭터. 어떤 형태로도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님)과도 같다. 당사자들도 그런 유연한 노동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창작 노동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노동 형식에 익숙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 및 건강, 산업 생태계가 지속가능하고 일터의 안전이 보장되려면 당연히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회사원'을 잣대로 노동자성 기준을 들이대고, 여기에 충족되지 않으면 노동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으며, 그래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모조리 사라지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방송미디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건 머나먼 길이다.
노동자성을 회피하기 위한 방식도 다양하다. 4대 보험 미가입이나 업무용 노트북을 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실제로 작동할 만한 상황이 없어도 일하는 사람이 제3자를 고용하여 일을 넘길 수 있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고, 출퇴근과 업무 지시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노동자성을 회피하는 데 성공하면 노동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베팅해보는 것일 테다. 이러한 편법을 계속 용인해서는 안 된다. 행정당국은 업종 특성과 현실에 맞게 노동자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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