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부티크' 매장 전경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신촌점 유플렉스관 4층 전체를 중고품 전문관인 '세컨드 부티크(Second Boutique)'로 운영 중이다. 총 244평의 공간을 중고라는 테마에 할당해 세컨드 핸드(중고 물품) 의류 브랜드 '마켓인유'와 중고 명품 플랫폼 '미벤트', 럭셔리 빈티지 워치 편집숍 '서울워치' 등을 유치해 발 빠르게 공간에 트렌드를 담았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중고 물품 팝업을 운영하고 중고 플랫폼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등 중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만의 변화가 아니다. 프랑스 라파예트 백화점도 중고 패션 전문매장을 일찍이 운영하고 있으며 독일과 영국, 미국에서도 중고 매장을 운영하는 백화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전 세계 리커머스(re-commerce) 시장이 향후 2025년까지 연평균 15~2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해 중고 시장을 품는 백화점의 합리성을 설명해준다.
중고 매장의 핵심은 '명품'
바야흐로 상품 과잉의 시대다. 생산기술 향상으로 하나의 물건이 갖는 가치(가격)는 이전에 비해 낮아졌다. 중고를 애써 사기보다는 온라인 가격 비교를 통해 저렴한 새 상품을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세상에서 중고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백화점에서 아무 중고 제품을 갖다 놓는다고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상품, 의미 있는 상품, 구하기 어렵거나 고가의 상품이 중고로서도 매력 있고 백화점 입장에서도 팔 만한 가치가 있다. 백화점 내 중고숍들을 봐도 유니크한 브랜드 또는 명품들을 거래하고, 현대백화점 '세컨드 부티크'의 매출을 봐도 3040의 주요 소비는 명품과 시계였다.
과연 가치소비, ESG 소비로 백화점의 중고 시장 진출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의 확산으로 사람들에게 중고 거래 자체가 보다 익숙해졌고, MZ세대의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소비 트렌드도 중고품에 대한 수요를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백화점 내 중고 매장에서 팔리는 상품들을 보면 그 방점이 중고 자체에 있지 않고 "명품"과 "브랜드"에 있는 듯하다.
주변을 보면 사회초년생 대다수가 명품을 갖고 있다. 학교에 가보면 10대 학생들까지도 명품 소비가 낯설지 않다. 이렇듯 '명품의 대중화'는 젊은 층에서 명품 구매가 크게 증가하며 가속화되고 있다. 10대, 20대가 선망하는 아이돌과 셀럽들은 유명 명품의 브랜드 앰배서더로 비슷한 나이대의 연예인들이 비싼 명품들을 다양하게 착용하는 모습이 쉽게 노출된다.
또한 명품을 과시하는 힙합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명품 브랜드들을 과거에 비해 쉽게 접하고 있다. 그래서 명품을 힙하다고 느끼며 선망하는 한편 좀 더 친숙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생긴 것. 따라서 명품 소비가 이전 세대보다 쉬워진 측면이 있다.
SNS의 생활화도 명품 구매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상품이 곧 내가 되는 현대 소비 사회에서 명품은 내 정체성과 지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해외여행 사진을 SNS에 올리며 경험 자체를 전시하기도 했지만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명품 소비를 하는 본인을 SNS에 전시함으로써 나의 정체성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커졌다.
이렇듯 명품 대중화로 인해 명품 소비 경험은 늘었지만 경제는 안 좋아지고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중고 명품은 이들의 욕구를 합리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된다. 중고 명품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데 있어 MZ세대가 주역이라는 데이터들이 많이 나와 있다.
대내외 경제 불안 속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소비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은 신제품보다는 저렴한 중고 명품을 구매하고 기존 명품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의 소위 신명품(르메르, 메종마르지엘라, 메종키츠네, 아미 등)을 구매한다. 이렇게 젊은 층 중심의 중고 명품, 유니크한 브랜드 및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가 백화점의 중고 매장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
백화점이 만들어낸 변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