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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도입 후 벌어진 일... 정부는 책임질 수 있나

30년차 벌크 시멘트 운송 노동자가 겪은 실상... 다 올랐는데, 왜 운반비는 그대로여야 하나

등록 2022.11.29 19:35수정 2022.11.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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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레미콘 차량 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29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의 한 레미콘 업체에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있다. ⓒ 연합뉴스

 
나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 운전을 하고 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영월과 단양의 양회공장에서 각지의 레미콘 공장으로 시멘트를 운송하는 게 생업이다. 지난 목요일인 11월 24일부터 나와 동료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

컨테이너와 시멘트 부문에서 시행하고 있는 안전운임제를 입법화하고 적용품목을 철강, 유류, 택배, 사료곡물, 자동차 운송 등 계량화하기 쉬운 부문으로 확대하자는 것인데 정부와 화주 쪽에선 우리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화물 운송을 볼모로 불법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화물을 운송하는 사람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안전운임제가 2020년 2월부터 현장에 적용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해 1월, 안전운임제에 대해 설명하러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 봉변당할 뻔 했다. 과장이 아니다. 다 좋았다. 짐을 싣기 위해 한나절씩 기다려야 했던 부분에 대한 대기료, 회차료, 험지 수당, 야간 수당, 휴일 수당, 과적금지 조항 등등. 그런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 아니, 없느니만 못했다.

화물차주들에게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여 과적과 과로, 난폭운전과 교통사고를 줄이자는 게 안전운임제의 취지였다. 일종의 최저운반비 개념으로 이를 위반하는 화주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법으로 정해진 안전운임은 '위험할' 정도로 낮았고 그 이상을 지급할 '착한' 화주는 대한민국에 없었다.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최저운반비만 지급했다.

15년 넘게 적던 운행일보 작성을 그만둔 이유

2020년 봄, 내가 다니고 있던 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출발지는 강원도 영월의 쌍용양회, 도착지는 경기도 안성의 OOOO레미콘. 네이버 지도상 편도 주행거리는 127km. 나는 한 탕에 25만 8천원을 받고 그 길을 5년째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 거리를 2020년 2월 시행된 안전운임표에 적용하면 톤당 8750원, 26톤을 실으면 한 회당 운반비는 22만 8천원이 된다. 내가 다니던 공장만 운반비가 떨어진 게 아니었다. 같은 일을 똑같이 하는데 월수입이 100만 원 넘게 줄어든다면 누가 이걸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화물노동자들은 모두 '운행일보'를 작성한다. 한 회전 당 기름 값이 얼마, 통행료가 얼마, 그 달에 지출한 타이어 오일 라이닝 비용이 얼마, 그래서 한 해 매출이 얼마에 소모가 얼마... 시시콜콜하게도 적는다. 이걸 15년 넘게 적다가 그해엔 그만두었다. 한 푼이라도 줄이고 아껴보겠다고 기름을 '쥐어짜는' 게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다. 요즘 언론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되어 화물차운전수들의 수입이 두 배가 되었고 운송비 부담 때문에 기업이 도산할 지경이라고. 이게 무슨 소린지, 당사자 입장에서 답해 주어야 할 의무감이 생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1993년에 벌크 시멘트 운송 트레일러 일을 시작했다. 다들 그랬던 것처럼 맞교대 월급 기사로 일을 배웠다. 맞교대는 두 명의 기사가 한 대의 차량을 교대로 운행, 가동률을 최대한 높이는 방식이다. 믿기지 않게 무식한 방식이지만 추석과 구정 당일만 빼고 차는 굴러가야 했다.

24시간 한숨도 안 자고 운전하는 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도대체 일 년 삼백육십사일 근무가 가능하냐고? 우리는 다들 그렇게 했다. 많이도 다치고 여럿도 죽었다. 짐 싣고 상차장에서 출발한 차가 공장 정문에서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주 5일제, 48시간 근무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일산, 평촌, 분당 신도시와 서해안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 건설로 시멘트 육송 수요는 넘쳐났다.

일을 그만두는 동료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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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이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경제 부총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 의결했다. ⓒ 권우성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꼭 되새겨야 할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땅위에 랜드마크라는 게 있는 것처럼 벌크 시멘트 운송 일에도 기준이 되는 몇몇 착지가 있다. 예컨대 성신양회 부천공장이나(지금은 한일시멘트 부천공장) 수원공장(지금의 건설레미콘 수원공장) 같은 곳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저 무렵, IMF 사태가 벌어지기 전 단양에서 부천 성신까지의 육상운송단가가 톤당 1만 2500원이었다는 것이다. 이걸 이십 몇 년 후에 시행된 안전운임표에 적용시키면 얼마가 될까. 단양에서 부천공장까지의 거리는 182km다. 궁금한 분은 화물연대나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직접 찾아보시면 된다. 믿기지 않겠지만 차주에게 지급되는 벌크 시멘트 운반비, 27년 동안 제자리걸음 했다. 이 운반비가 오른 게 2021년이다.

일을 그만두는 동료들이 늘어났다. 안전운임제가 도입되면 좋아질 거라며 버티고 버티던 차주들이 사업을 접은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 처음 겪는 일이 벌어진 게 2021년이다.

벌크 시멘트 운반비가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조금씩 줄어들어 건설경기가 살아나자 어딘가에서 안전운임에 10%, 20%를 가산해 준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작년 하반기인데 일이 무지막지하게 밀리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운수회사마다 일감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그때쯤에야 다들 알게 되었다. 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운송차량과 화물 노동자가 줄어든 게 원인이란 걸. 이것이 수입이 늘어난 배경이다.

일이 적은 운수회사를 찾아가는 동료들

누추한 일 하는 곳에 좋은 옷 입고 갈 수 없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적 있다. 웃옷은 꼭 왼쪽 어깨가 헤진다. 안전벨트 때문이다. 양말 뒤꿈치는 한 달이 못 가 뒤꿈치 부분이 망사가 된다. 가속페달 덕분이다. 창피한 얘기지만 48시간 동안 눈꺼풀 한 번 못 붙이고 의자 위에서 털썩거리면 속옷보다 살갗이 까진다. 깜박이 레버 당길 힘도 없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 기사들은 일감이 많은 사무실을 찾아 자리를 옮겨가곤 했다. 요즘은 일이 적은 운수회사를 찾아간다.

지난 이십 몇 년 동안 무엇과 무엇이 몇 배로 올랐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짜장면 값부터 안 오르는 것 없이 다 올랐다. 왜 오르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올랐다. 운송비가 올라 문 닫을 지경이라는 회사 대표에겐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네 제품 값은 27년 동안 한 푼도 안 올랐냐고. 지금에 와서 안전운임제를 폐기하자는 건 다시 예전의 운반비로 돌아가라는 것인데 나와 동료들은 이게 이미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짐을 실으려 길게 늘어선 차들을 보면 소를 닮았단 생각이 든다.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힘센 소. 소만도 못하단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소도 때맞춰 여물 먹이고 날 저물면 재우지 않던가. 소는 원래 새김질에 방귀질, 발길질에 뿔질도 한다. 그게 살아있는 소다. 나는 정부와 화주 단체가 소를 좀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맛으로야 등심에 안심이 좋겠지만, 일하는 소 잡아먹고 나면 집안 살림이 어떻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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