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릉.조선의 3대 임금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묘역.
이상헌
조선이 개창되기 1년 전에 사망한 신의(神懿)왕후 한씨는 태조 이성계와의 사이에서 6남 2녀의 후사를 보았다. 차남인 방과(芳果)가 2대 임금인 정종이고 다섯째 아들인 방원(芳遠)이 태종이다.
정안대군 이방원과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1등 공신이었다. 방원은 16세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명석했을 뿐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자질도 출중했으며, 정도전은 이성계의 장자방으로서 조선 개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나라의 운세가 기울어가던 고려 말, 역성혁명에 반대하던 정몽주는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려다가 방원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 일로 방원은 이성계의 분노를 샀을 뿐 아니라 두 번째 부인 신덕(神德)왕후 강씨와 정도전의 배척으로 공신에서 탈락한다. 말년의 이성계가 신덕왕후 소생인 방석(芳碩)을 왕세자로 책봉하자 사달은 예견된 것이었다.
▲ 고라니가 뛰어노니는 대모산 헌릉인릉 산책기 ⓒ 이상헌
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과 남은 등을 죽이고 이복 동생이자 세자인 방석과 방번(芳蕃)마저 살해한다. 이후 2대 임금으로 정종이 추대되고 자신은 세자에 책봉되어 만천하에 자신이 후계자임을 공고히 한다.
정종 2년에 넷째 형인 방간(芳幹)이 박포와 공모해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자신을 죽이려 하자 이를 평정하고 실권을 장악한다. 비록 임금의 자리에 있던 정종이지만 방원의 무력 앞에서 정사를 돌볼 수 없었기에 왕권을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즉위한 태종은 외척과 공신들을 제거하여 전제왕권을 확립한다. 원경왕후와는 말년에 감정의 골이 깊이지는데 친정 식구들을 주살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