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린 날에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위로라는 말이 떠오른다
김지영
국밥은 마음이 추운 날에도 생각나는 음식이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왠지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는 날이면 진한 육수의 돼지 국밥이 떠오른다. 나는 특히 내장이 가득 들어간 것을 좋아한다. 쫄깃하고 퍽퍽하고 기름진, 여러가지 식감이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뜨끈하고 뽀얀 국물과 함께 떠 먹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다 풀리는 기분이다.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이 시린 날,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위로'라는 말이 떠오른다. 혼밥 메뉴로도 제격인데, 단출한 반찬이지만 뚝배기에 뜨끈한 국과 밥을 한 술 두 술 뜨다 보면 내가 혼자 와 있다는 생각을 잊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꾸밈도 없이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우선 한 술 떠본다. 식당에 따라 염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간을 보고 취향껏 새우젓을 조금 첨가한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그 형태가 수육이든, 보쌈이든, 족발이든, 국밥이든 새우젓이 꼭 함께 나온다. 찬 성질의 돼지고기의 소화를 돕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음식 궁합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맛있다.
부추 무침이 나오는 식당이라면 부추 무침도 듬뿍 덜어서 국밥에 넣어준다. 밥을 따로 먹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밥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부추 무침을 고명으로 올린 국물을 한 술 떠서 먹고 중간 중간 돼지고기 건더기를 건져 먹는다.
반 쯤 먹었을 때가 되어서야 남은 밥을 말아서 먹는다. 처음에는 국물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밥과 국물의 환상의 케미를 입 안 가득 느끼기 위해서. 반찬으로는 시원한 깍두기와 오이 고추 한 두 개면 충분하다.
소박하면서도 든든한 국밥 한 그릇을 먹을 때면, 뱃속이 따뜻해지면서 마음까지 데워지는 느낌과 함께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국밥의 다른 말은 위로가 아닐까? 그렇게 날도 춥고 마음도 추운 날에, 국밥이라고 쓰고 위로라고 읽는 음식을 한 뚝배기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면서 또 며칠 잘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다음 국밥이 또 먹고 싶어지기 전까지.
겨울이 더 깊어지면 굴 국밥을 먹으러 가야 한다. 해산물이 들어간 국물 특유의 연한 푸른 우윳빛이 감도는 매력적인 굴 국밥은 보양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매생이가 들어간 굴 국밥을 먹을 때는 입 천장이 데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매생이에 덮여서 아래의 국이 좀처럼 빨리 식지 않기 때문이다. 매생이 굴 국밥을 먹다가 입 천장 데인 적이 있는 경험자의 말이니 새겨 들으시기를. 국밥 한 그릇에 몸도 마음도 따뜻한 계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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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국밥 하나요" 음식만 주문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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