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깻잎을 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이제는 이주노동자들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춘희
고용주에게 대박,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피눈물
이렇게 고소득을 올려주는 깻잎이니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낙수효과'가 좀 있지 않을까?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부터 보자. 그들의 기숙사는 햇빛도 들지 않고 환기도 안 되며 바퀴벌레와 파리가 우글거리는, 곰팡이가 가득한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이다. 화장실도 없고 잠금장치도 없다. 화재와 침수 같은 재난에 취약하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도저히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할 수가 없다. 2020년 12월 20일 캄보디아 여성 속행씨가 난방이 되지 않는 기숙사인 비닐하우스에서 영하 18도의 날씨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용주들은 이들이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열악한 주거 시설에 사는 것이 괜찮다고 여기고 정부는 이런 시설을 방관해 온 결과 발생한 비극이다. (관련 기사:
속헹씨 시신 발견한 동료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산다 http://omn.kr/1r65h)
임금이라도 제대로 받고 있을까? 임금체불을 신고한 이주노동자 수는 2016년 약 2만 1000명이었으나,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평균 3만 명이 넘어 약 1.5배 증가했다. 2017년 51만 8천명 수준이던 이주노동자는 코로나19로 2021년 34만 3천명으로 줄었지만, 체불임금 규모는 오히려 늘어난 1183억 원으로 2016년 686억 원의 약 두 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고용주에게 문제제기를 하기 보다 사업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그 규모는 더 클 것이다.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해도 이주노동자들은 언어와 제도의 장벽, 입증의 어려움, 근로감독관의 소극적 조사 탓에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고, 어렵게 문제제기를 해도 현실적으로 체불임금을 받아낼 방법이 별로 없다. 임금을 체불한 고용주는 고용허가가 취소되거나 하는 식의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니 3년간 수천만 원 떼먹고도 오히려 당당하고, 고용노동부 사무관은 도대체 3년 동안 임금 못 받으면서 거기 왜 있었냐고 되묻는다.
일이 좀 편하기라도 할까? 농장주들은 8시간 안에 깻잎 15상자, 즉 1만 5천 장을 따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강요한다.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식사 시간, 쉬는 시간,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밭 한가운데서 볼 일을 해결해가며 쉬지 않고 일해야 겨우 딸 수 있는 분량이다. 이런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노동자 책임으로 돌려 월급을 깍는다. 당연히 불법이다.
일상적인 성희롱, 성폭력, 언어폭력, 괴롭힘을 당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신고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피해 사실을 입증 못하면 강제추방당할 수 있어 신고 자체를 할 생각을 못한다. 일하다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도 없을 뿐더러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무지한 탓에 대부분 병원에 가지 못한다.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유해화학물질 노출 등 산재에 취약하지만 보호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법도 근로계약서도 휴지조각일 뿐이다. 고용주들은 불법임을 엄연히 알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은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법이랑 맞지 않으니까, 법이 아닌 우리끼리 정한 규칙으로 외국 애들 꼼짝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일터를 옮기면 되지 않냐고? 이주노동자들은 그럴 자유조차 거의 없다. 사업장을 옮길 수 있는 사유는 극히 제한적이고 횟수도 3번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과도한 제한이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한 헌법재판관은 둘밖에 없었다.
불법체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국가가 불법체류자를 단속해 체류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브르후가 말한 '법률적 불법', 즉 법률로써 실질적 정의에 반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먹는 음식은 단지 나의 영양이나 건강과만 관련되지 않는다. 음식은 전체 인구의 영양과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의 자원, 기후변화, 사회정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권리가 있고, 그 음식들에 착취당한 노동자의 눈물이 배어 있다면 그것을 거부할 의무가 있다. 그들도 우리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