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서 시인의 시집
시인의 일요일
내가 걸어가야 할 목적지가 가늠할 수도 없이 멀고 높은 위치라면, 목적지만을 바라보며 걷는 것은 힘이 빠지는 일일 수 있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로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럴 때는 중간 기착지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큼 걸어가고, 내일은 이만큼 걸어가다 보면 목적지에 조금씩 가까워질 뿐만이 아니라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힘이 들면 바닥만 바라보고 걷는 것도 괜찮습니다. 특히 오르막길을 걸을 때 바닥만 바라보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닥을 보고 걷는다'고 말하니 20여 년 전 올랐던 고구려 첫 수도인 '오녀산성'이 떠오릅니다. 천혜의 요새라고 부르는 이 산성을 오르기 위해선 길고 가파른 계단을 걸어야 합니다.
이 끔찍한 계단을 오르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앞의 계단(땅)만 바라보면서 한 발씩 올라서는 것이죠. 만약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계단을 오른다면 산성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반복해서 걸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닥'을 밟고 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면(地面)을 밟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면, 오르막·내리막길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사람에게 날개가 달렸다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상승과 하강으로 바뀌어 불렸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하늘을 날지 못하고 바닥을 딛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슬퍼야만 할까요. 우울한 눈으로만 바라보려 한다면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한다면, 바닥은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인간'은 바닥에서 희망을 찾아낸 존재, 바닥을 딛고 일어나 하늘을 날고, 우주를 향해 날아오른 지구의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신윤서 시인은 ...
2012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부문, 2013년 오장환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잘 자라는 쓸쓸한 한마디
신윤서 (지은이),
시인의 일요일, 2022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