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열린 일일호프공간 짬을 중심으로 만나는 동네 이웃들이 모두 모였고, 그날 목표였던 빔을 사고도 몇 달 치 월세를 벌었다.
김성희
아이들이 자랄수록 미래가 불안해져, 어디든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교육열이 높은 곳은 집값이 높았고, 우리가 아무리 아끼고 모은다고 해도 그런 곳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시대, 사는 곳이 그 사람을 대변해 주는 시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득한데 그 집값 높고 교육열 높은 곳에 살 수 없다는 패배의식만으로 살았다면, 내 삶은 여러 날 숭숭했을 거다. 아끼고 아껴도 부족한 것만 눈에 들어왔을 테니까.
다른 삶의 방향을 찾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아이와의 관계라도 잘 붙잡고 싶었고, 공간 짬에서 열리는 비폭력대화 교육을 찾아 듣게 되었다.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으로 열린 교육이라 교육비가 저렴하거나 무료여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강좌들이 더 있었고, 그 교육들을 들으면서 조금은 다르게 살아도 괜찮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다.
셋째 육아에 지쳐 있는 나 대신 반짝이는 아이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이웃을 만났고, 놀이터에서 노느라 저녁 때를 놓치고 있는 아이를 보면 자기네 집 아이와 같이 저녁을 챙겨 먹이는 이웃을 만났다. 내가 어릴 때 쿠크다스 먹고 싶다는 말을 못 해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너도나도 집 앞에 쿠크다스를 놓고 가는 이웃들이 있다. 봉제산에 사는 산 고양이가 며칠 보이지 않더니 새끼를 데리고 나왔다거나, 오래된 문방구가 사라진 자리에 치킨집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문제는 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작가 공선옥은 책 <춥고 더운 우리집>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길에 이웃들을 만나면서 그토록 불만 많던 "내 집이 그리 나쁜 집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126쪽)" 된다. 그리고 좋은 집의 두 번째 조건으로 좋은 이웃을 꼽으면서 구순이 넘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씨앗이나 나물이나 찐 옥수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 집 저 집에 두고 가신다. 아무도 없어도 놓고 간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것을 보고 큰 아이들이 또 나중에 그럴 것이다(129쪽)."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을 보고 큰 아이들이 또 그럴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우리 아이들도 이웃 아이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밥을 챙겨 먹이고, 다른 이의 아픈 기억을 소중하게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거라고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폐지'가 마치 나처럼 삶의 다른 방향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딱 잘라 그런 건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이토록 복잡한 거였구나 싶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12월 22일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 지원 조례 폐지안이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됐다는 기사가 났다. 조례 폐지의 이유로 "본래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자치구 단위에서 사업 추진하는 것이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중물 차원에서 지난 10년간 서울시에서 지원을 지속하여 왔으나, 사업 과정에서 특정 단체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비판 및 논란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각종 비효율이 드러나고 있다"라고 했다.
문제는 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을 공동체 사업을 통해 개인들이 경험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야 "서울시 주도의 획일적 지원이 아닌, 각 자치구 실정에 맞는 자치구 주도의 마을사업을 추진하고자 함"이라고 '서울특별시 마을 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폐지의 목적을 밝힌 것처럼, 일방적 폐지에 그치지 않고 각 자치구 주민들에게 필요한 마을사업들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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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을 공동체'가 아이 셋 내 삶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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