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운동화새벽 산책을 하는 아버지의 발을 지키는 낡은 운동화
오안라
아버지의 구두를 샀던 기억도 딱 한 번이었다. 전달하지는 못한 구두였다. 구두 티켓을 주며 구두를 부탁하셨는데 지하철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의자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구두를 놓고 왔다"는 말에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 후에라도 한 켤레 사 드렸어야 했는데, 결혼을 해 친정을 떠난 이후론 친정을 향하는 몸도 마음도 굼떴다.
"내가 죽으면 수의는 준비하지 말고 깨끗한 종이에 싸서 장례를 치르라"는 아버지는 옷도 신발도 모든 것이 너무 많다 하신다. 각막을 기증했기에 되도록 백내장 수술도 안 하시겠다는 아버지는 자신에 관한 물건 구입을 극도로 꺼리신다. 그런 아버지의 신발장에는 아버지의 운동화 몇 켤레가 있다. 평생 새벽 산책을 해 오신 아버지의 발을 지켜주는 일등 공신들이다.
올해 구순을 맞으신 아버지는 평생 새벽 운동을 해오셨다. 아버지가 사는 아파트 안에 아버지의 걷기 길이 있다. 아버지가 동 대표를 하던 해에 직접 호미를 들고 박혀있는 돌과 발에 걸리는 방해물들을 캐내어 흙 바닥 길 300미터를 걷기 좋은 길로 만들었다. 그 전엔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이 아버지의 걷기 길이었는데 아파트 안에 걷기 길을 만든 후에는 그 길을 걸어 새벽 걷기를 하신다. 몇 켤레의 운동화를 친구 삼아 새벽 산책을 하는 아버지에게 구두는 무용지물이다.
아버지에게 구두의 시대는 조기 퇴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50대 중반에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5년 전 명예 퇴직을 한 남편도 심리적인 구두의 시대는 끝났다. 나 역시 키가 줄어드는 나이가 되니 관절과 걷기 건강을 염두에 두고 구두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아버지에게 구두 한 켤레 사드리지 못한 나는 아들이 취업됐을 때 양복 2벌과 구두 2켤레를 한 자리에서 샀다. 자식에게는 즉각적인 이 마음이 아버지에게는 왜 속도가 늦는 것일까. 아버지의 낡은 운동화를 보며 부모에게 게으른 나의 마음을 본다.
구두의 시대가 끝난 아버지와 남편. 이제는 남편에게도 산책용 운동화가 늘어난다. 단화의 멋스러움을 추구하는 시대도 끝나고 관절을 보호하는 밑창이 튼튼한 런닝화의 시대를 열고 있다. 그래도 아들이 장가 들 때는 남편의 구두 한 켤레는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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