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구워 준 고기는 유난히 맛있었다
오지영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에게 우리 점심 뭐 먹을까, 물으니 엄마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이내 엄마의 대답이 날아왔다.
"우리 OO갈비 가자."
그 가게라면 나도 예전에 가본 적이 몇 번 있는 곳이었다. 갈비탕, 냉면도 팔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숯불갈비가 맛있는 곳이다. 그 때문에 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식당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점심인데? 갈비를? 너무 거한 게 아닌가 싶어서 엄마한테 혹시 고기를 먹을 거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식당은 점심시간에도 고기 먹는 손님이 많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점심으로 고기 먹는 게 뭐 어떤가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팔짱을 끼었다. 엄마를 보니 나도 모르게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졌다. '가자, 고기 먹으러. 오늘은 내가 쏜다!'
식당에 엄마와 마주 앉아서 갈비를 시켰다. 식당에는 손님이 많았다. 병원 근처 식당이라 그런지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었다. 갈비를 먹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불고기나 갈비탕을 먹는 손님들인 것 같았다.
상 위에 밑반찬들과 고기가 놓였다. 고기를 구우려고 집게를 집었더니 엄마가 고기는 본인이 더 잘 굽는다며 집게를 가져가셨다. 나는 젓가락으로 밑반찬을 집어 먹으며 익어가는 고기를 기다렸다. 뭔가 이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엄마와 단 둘이 밥을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적에는 아빠와 동생들이 함께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바로 취업하면서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집에서 회사가 멀어 독립했기 때문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는 자주 오지 못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함께 거느리고 뜨문뜨문 친정에 가곤 했다.
"다 익었어. 얼른 먹어."
엄마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 한 점을 나에게 건넸다. 그 후에도 잘 익은 고기가 자꾸 내 접시로 왔다. 내가 알아서 먹겠다는데도 엄마는 자꾸만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보이면 내 접시에 놓아주시는 듯했다
반찬을 추가해주시는 직원분이 나와 엄마를 보더니 "엄마랑 딸이 점심에 데이트? 보기 좋네요"라는 말을 건네셨다. 엄마는 "딸이 맛있는 거 먹자 해서 왔어요" 하면서 은근슬쩍 내 자랑을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학창 시절엔 엄한 엄마였는데.
나는 모르고 엄마는 생각한 것
밥을 먹으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 동 아주머니는 잘 계신지, 동네 슈퍼 아저씨 건강은 어떠신지. 이렇게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눈이 펑펑 내려 버스가 끊겼던 날, 초보운전이라 겨우겨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앞까지 차를 몰고 온 엄마.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친구들에게 '야, 타! 우리 엄마가 다 데려다주신대' 하고 큰소리를 쳤더랬다. 그렇게 과거를 추억하기도 했다.
고기를 먹고 후식 냉면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으니 정말 숨쉬기 힘들 정도로 배가 빵빵해졌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엄마랑 단 둘이 먹는 점심도 좋구나.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엄마는 손에 봉투 하나를 들고 왔다. 뭐냐고 물으니 식당에서 파는 불고기전골을 포장했다고 했다. 엄마가 여기 고기를 이렇게나 좋아했던가, 생각하다가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엄마, 혹시 계산했어?"
그랬더니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내가 산다니까. 하면서 입을 삐죽 내밀었더니 엄마는 처음부터 사주려고 했다고 했다. "너 얼굴 보니까 많이 지쳐 보여서. 그래서 고기 먹자고 한 거야. 너 여기 갈비 좋아하잖아."
그래서 점심부터 갈비를 먹자고 했구나. 생각해보니 엄마는 점심을 가볍게 먹는 편인데 좀 이상하다 싶긴 했다. 이어서 엄마는 방금 챙겨온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가서 애들이랑 나눠 먹어. 집에 가서 저녁 준비하려면 귀찮잖아. 그냥 냄비에 넣고 끓이면 돼."
"……."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손에 들려있는 봉투를 보며 엄마의 마음을 떠올렸다. 내가 익어가는 고기를 보고 있는 동안, 엄마는 내 안색을,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집에 돌아가 저녁을 준비할 나를 바라보고 있으셨구나.
엄마한테 밥 사드린다고 으스대며 갔다가, 맛있는 음식과 엄마의 마음을 잔뜩 받아오기만 했다. 나도 이젠 두 아이의 엄마인데, 이상하게 엄마 앞에만 서면 여전히 철없고 어린 딸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한 점심시간이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행복이 아니었을까 위로해 본다. 종종 엄마와 단 둘이 점심 먹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다음번엔 꼭, 반드시 내가 맛있는 밥을 대접해야지. 아, 엄마가 좋아하는 찹쌀 도넛을 한아름 사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함께하면서.
이런저런 모임들이 많은 요즘이다. 지인들과의 모임도 좋지만, 가족들과도 특별한 식사를 함께 하면 어떨까? 서로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와 새해 계획을 나누다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맛있는 밥상이 될 것이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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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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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산다"고 으스대는 딸에게 "갈비 먹자"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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