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타기 훈련 중한 동네 사는 축구 친구들끼리 모여 훈련.
이지은
"어쩌겠어, 이게 지금의 나인데"
"못해도 끝까지." 코치님에게 늘 듣는 말이다. 내 발이 조금만 느려지려고 해도 그분은 이 말을 목놓아 외친다. 한번은 쉬는 시간에 혼자 공 만지고 있는 내게 코치님이 슬쩍 다가오더니 말을 붙였다.
"지금 배우는 것들 다 잘 모르겠고 너무 힘들죠?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나도 즐기는 축구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대회 나갔다가 순식간에 지고 나니까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금은 버겁겠지만 일단 한번에 다 익히려 하지 말고 그냥 눈에 많이 담아두세요."
나중에 들었는데, 코치님은 볼 돌리기 이후 한껏 의기소침해진 나를 눈치챘고, 이후 수업부터는 이 훈련이 잠시 중단되었다. 내 대충대충이 동료의 걱정을 사고 교사의 수업 방식까지 바꿔버린 것 같아 한없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로펌 인턴 체험을 담은 예능 <신입사원 탄생기 - 굿피플>(2019)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로스쿨 재학생 여덟 명이 한 로펌 회사에서 인턴 기간을 거쳐 최종 두 명을 선발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결국 누군가는 탈락할 줄 알면서도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같이 아꼈다. 회를 거듭할수록 눈부시게 성장하는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장 마음이 가던 인턴은 이상호씨였다. 매사에 꼼꼼한 이시훈 인턴이 순간적인 기지가 장점인 이상호 인턴과 한 팀이 된 적이 있다. 어차피 멘토 변호사들이 검토해주는데 자료만 찾으면 되지 굳이 우리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상호씨에게 이시훈씨는 대답한다.
"그건 맞는데, 어쨌든 대충 하지 마요, 상호씨. 납득할 수 있는 걸 만들어놔야 하잖아. '될 것 같은데'라고 하면 안 돼요."
대충 하지 말라. 스스로를 납득시킬 때까지 노력하라. 그 충고를 주워듣는 이상호씨의 표정은 한 대 얻어맞은 것마냥 얼얼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