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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역 '무정차 통과' 벌어진 이유, 이것 때문입니다

장애인도 밥 먹고, 화장실 가기 위한 예산 필요... 변화를 위한 몸부림, 요구액 0.8% 확보

등록 2023.01.03 08:58수정 2023.01.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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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표시된 시계 준비한 전장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5분이 표시된 시계를 들고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지난 1년 동안 지하철을 타면서 평온한 사회에 돌을 던졌다. '감히'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전장연은 지하철 행동으로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안한 휴전을 받아들이며 시위를 잠정 중단하고 국회의 예산 반영을 기다렸다. 하지만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2023년 예산안에 반영된 장애인권리예산은 애초 요구했던 예산의 0.8% 수준인 106억 8000만 원이다. 

이에 전장연은 '시민권이 비장애인만의 것이 아님'을 외치기 위해 1월 2일 지하철 행동을 재개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2월 19일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19개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장연은 출근길 시위로 열차 운행이 5분 지연될 때마다 공사에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한 바 있다. 전장연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해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하철에 탑승해 선전전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법원의 조정안을 거부하고 무관용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삼각지역에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이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고 지하철은 무정차하고 지나갔다. 지하철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외쳐온 지난 1년간 누군가는 전장연이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정부 여당을 '삥 뜯는다'며 비난했다. 전장연이 요구한 무려 1조 3천억 원의 예산. 대체 그 돈이 뭐길래.

2014년 한 장애인이 화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집에 불이 났는데 대피할 수 없었다. 24살에 뇌출혈로 장애를 갖게 된 그는 언어장애가 있었고 오른팔과 다리를 쓰지 못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장애3급 판정을 받은 터라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등급 재심사를 받으면 2급으로 조정될 거라 기대했지만 등급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4년 4월 11일 그는 활동가들과 함께 장애등급제의 문제를 알리고 활동지원서비스 긴급지원이 필요하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집에 불이 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송국현이다.

세상을 떠난 수많은 '송국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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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장례식장. 송국현씨가 시든 꽃 속에서 웃고 있다. ⓒ 이명옥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활동지원사가 없는 사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들이 있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상황에서 호흡기가 떨어져서, 화재가 났는데 대피하지 못해서, 보일러가 동파되어 흘러나온 물 때문에 체온이 떨어져서 수많은 '송국현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는 오래되고 낡은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5월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규탄 결의대회'에서 한 활동가가 발언을 했다.

"저는 뇌성마비고, 시설에서 나와 살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물 한 모금 먹기 위해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똥이 마려워도 볼일을 볼 수 없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이거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할까 무섭고, 물을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저를 죽여 주세요. (…)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몸이 힘들어 이만 마치겠습니다."

중증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 먹는 것에서부터 씻는 것, 용변보는 것, 이동하는 것 등 일상생활을 지원받는다. 활동지원사를 통해 청소, 빨래와 같은 집안일을 하고 요리도 한다. 자다가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어야 한다. 허나 중앙정부는 장애인에게 하루 최대 16시간만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루 24시간 중 그 8시간의 공백 때문에 사람이 죽고 존엄을 훼손당한다.

막고, 기고, 삭발하며 외쳐온 소박한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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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12월 20일 오전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송국현 동지가 함께했던 5년간의 광화문 농성(2012년 8월 ~ 2017년 9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으로 장애등급제는 폐지되었다. 하지만 장애등급이 없어진 지금도 장애인은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장애등급심사는 아니지만 서비스종합조사를 통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다. 중앙정부가 제공하는 하루 최대 16시간의 수급을 받는 사람은 2022년 6월 기준 대한민국에 단 12명뿐이다. 사실상 장애등급제는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이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활동지원서비스 평균 시간과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2023년 정부안 대비 6539억 원의 증액을 요구했다. 도합 1조 3천억 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장애인이 1년 내내 지하철을 타고, 막고, 기고, 삭발을 하면서 외쳐온 권리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하루라도 빨리 다 같이 활동보조 24시간 지원받고, 시설도 다 없어지고,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 다 나와서 같이 일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들야학 같은 곳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자립도 많이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가고 싶은 데 가고.' -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촉구를 위한 삭발식 투쟁결의문 中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수도 없이 남겨져야 했다. 형제들이 학교에 갈 때 집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배우지 못했으니 일을 할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고 대안이 없다고 생각할 때 사회와 격리된 시설을 선택한다. 이동할 때 저상버스가 아닌 계단버스는 떠나보내야 한다. 지하철을 타도 엘리베이터를 찾아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경조사가 있을 때도 이동이나 접근이 어려워 함께하지 못한다. 비장애인들은 기차나 버스를 타고 휴가를 떠나거나 명절에 친지를 방문하지만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는 전국에 단 두 대뿐이다.

누구도 남겨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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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역에서 대치하는 전장연과 경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배치돼 있다. ⓒ 연합뉴스

 
장애인권리예산에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뿐 아니라 장애인도 언제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장애인이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예산, 중증장애인도 노동할 수 있게 하는 근로지원인 예산,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자립정착금, 주거유지서비스 등 탈시설 예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무려 1조 3천억 원의 돈은 어느 실세 의원 지역구의 집값이 오르는 개발 호재가 아니다. 산업단지나 각종 센터도, 경전철이나 고속도로도 아니다. 고작 일상이 된다.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채비해서 길을 나서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해서 사람을 만나고 다시 귀가해서 씻고 누워 잠을 청하는 그런 시시한 일상 말이다.

비장애인이 공기처럼 누리는 권리를 장애인도 누리고 시민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다시 장애인을 지나치겠다는 엄포였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5천 달러가 넘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예산 편성의 막대한 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 부처의 요구사항을 다 담아내면 대한민국 나라 망한다'고 말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서울경찰청장은 엄정 대응을, 서울시장은 무관용 강력 대응을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변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계단 버스를 멈춰 세우면서 기술상 불가능하다던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을 이루어냈다. 한강대교를 기어 활동지원서비스를 제도화했고 무작정 시설 밖으로 뛰쳐나와 거리에서 노숙 농성을 하며 탈시설 정책을 만들었다. 누구도 남겨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장연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
#장애인 #전장연 #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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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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