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이 국회에 제출한 북한 무인기 항적2022년 12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개된 합참이 국방위에 제출한 북한 무인기 식별 경로 관련 자료.
국회 국방위 제공
비록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대통령의 전쟁 불사 발언이라 하더라도 그 폐해는 매우 크다. 역시 실현가능성이 낮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핵 선제공격" 발언이 국제질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폐해와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서 적대국 지도자가 공히 전쟁 지향의 강경발언으로 경쟁하는 곳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외에는 한반도밖에 없다. 진정으로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위신을 꺾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전쟁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한 남북 지도자는 공히 '전쟁의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전쟁을 회피하면 자신의 위신이 추락하고, 전쟁을 결심하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바로 그런 처지였다. 당시에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을 통해 소련과 핵전쟁을 불사하려는 군사 지도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외교·정보 분야의 집단지성을 동원하여 해상 봉쇄라는 절묘한 선택으로 위기를 관리한 케네디는 핵전쟁의 위기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선 윤 대통령과 같은 독선과 독주도 없었고, 용산으로 무리하게 집무실을 이전한 책임은 은폐하고 군을 향해 윽박지르고 잔소리를 퍼붓는 책임 전가의 리더십도 없었다. 무엇보다 전쟁의 문제에 관해 윤 대통령은 케네디와 같은 신중함을 찾아볼 수 없다.
애초 이번 무인기 사태에서 군 대응 실패는 9.19 군사합의에 대한 무력화를 방치하고, 군에 대통령 경호대책을 마련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무작정 용산에 밀고 들어온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게다가 '새로운 비행금지구역도 반경 5km 이상으로 설정하자'는 군의 의견을 묵살하고 현대화 된 경호 시스템으로 3.7km로 대폭 축소된 비행금지구역을 운영해도 "충분히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2022년 3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중)고 거짓말을 한 김용현 경호처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
북한 소형 무인기에 의해 사실상 군의 작전 체계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만과 무능이 드러난 셈이다. 중요 정보를 누락하고 무능을 은폐하는 군에 더 큰 전쟁을 준비하도록 주문하게 되면 미국이나 유엔사가 통제할 수 없는 더 큰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강경발언은 어떤 지도자도 할 수 있고, 그런 발언으로 얻는 정치적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정치 리더십은 훈련돼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적어도 이 점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했음을 보여줬다" "군용 무인기 도발에 대한 내년도 대응 전력 예산이 국회에서 50%나 삭감이 됐다"(2022년 12월 27일 발언)면서 자신이 군 통수권자이자 행정의 수반으로서 마땅히 직시해야 할 사실과 책임을 외면하는 무책임으로 나아갔다.
사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정보관리, 대통령의 위기관리 메시지가 전부 엉켜버리고 오직 남의 탓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지난 4일에 비행금지구역이 침범 당했다는 합참 전비태세 검열실의 조사결과가 보고되자 이번엔 군은 "스치듯 지나간 수준이고 용산이나 대통령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면서 거꾸로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야당 의원을 향해서는 "정보유출 경위 의혹", "북한 내통 의혹"과 같은 가짜뉴스까지 동원하며 비난했다. 모두 윤 대통령의 묵인과 방조로 이뤄진 모양새다.
'평화배당금'을 몰수하는 대통령
종합하자면 광인전략과 거짓말, 책임전가라는 3박자로 이어지는 윤 대통령은 위기를 관리한다기보다 위기를 조장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엔 앞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초래된다. 무엇보다 확성기 방송 재개, 대북전단 살포 허용 등이 이뤄질 경우, 접경지역 200만 주민의 생존과 복지가 침해된다. 또한 서북 해역 섬 어민들에 대한 조업통제가 불가피하고, 일선의 전투원들의 피로도가 가중될 것이다. 9.19 군사합의로 국민에게 선사한 '평화배당금'은 몰수되고 안보 비용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