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식 원터치 잠금장치걸쇠 옆에 톡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면 잠금이 풀린다.
김은성
만지면 바로 손에 녹이 묻어날 것처럼 생긴 고리는 가능한 안 만지고 싶었는데, 이제는 온 몸을 동원해서 들어올리려고 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도구를 이용해야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대걸레가 몇 개 세워져 있었다. 대걸레 손잡이를 이용해 고리를 위쪽으로 쳐 올리면 열릴 것 같아 몇 번 시도했으나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헐.. 연초부터 이게 무슨 X망신이야..!!'
화장실에 갇혀서 무서운 것보다 '직원들 회식 따라왔다가 화장실에 갇힌 강사'로 길이길이 회자되는 게 더 무서웠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그곳을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화장실 고리는 끝까지 꿈쩍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핸드폰을 열어 119를 눌렀다.
"저.. 여기 OOO직화구이 건물 2층 화장실인데요.. 화장실 문이 안 열려요. 죄송합니다..."
혹시 위험한 상황때문에 화장실에 갇힌 건지,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나의 상태가 안전하고 양호한지 확인하는 119 대원에게 나는 너무 안전하고, 건강한데, 그냥 화장실에 갇힌 거라고 말하는 게 너무 미안하고 창피했다. 그냥 조금만 더 참을 걸, 아니, 술을 덜 마실 걸, 그냥 1층 화장실을 사용할 걸, 아니, 회식을 따라오지 말 걸 등등 온갖 후회와 자책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의 불안증이 조금 줄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19는 빠르게 출동했고, 나는 무사히 구조(?)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화장실 문이 파손되어, 문 수리비를 지불했고, '술 마시다 갑자기 화장실에 갇힌 강사' 타이틀은 피하지 못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렇게 적는 이유는 이 일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정보를 널리 공유하기 위함이다.
첫째, 고리식 잠금 장치도 원터치 방식이 있다. 다소 민망하지만 사실 화장실에서 날 구조한 건 119 구급대원이 아니었다. 119가 출동한 소리에 누군가 2층 사업장주에게 연락을 했는지 현장에 나타난 그분이 문고리 옆에 톡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면 열리는데 왜 문을 부수고 있냐고 항의하는 소리를 듣고, 내가 직접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이런 문고리가 원터치 방식으로 열릴 줄이야!!! 그때까지 문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119대원의 허망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둘째, 화장실에 갇히면 119신고 전에 사업장주부터 찾아라. 지금 생각하면 그날 119에 바로 신고하는 게 아니라 먼저 1층 식당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게 순서였는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술 때문이거나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창피해서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겠지만, 맨정신이라도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면 당황해서 나처럼 119부터 찾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자로서 조언하자면 그럴 땐 119 보다는 그곳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