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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독려·전광훈의 추천, 국힘 당심 아무도 몰라요

[이슈] 보수당 사상초유의 실험, 84만 명의 선택 주목..."제도 아닌 운용이 문제" 지적도

등록 2023.01.23 19:28수정 2023.01.2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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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2023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건배제의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금까지 보수정당 역사상 이런 전당대회는 없었다.

오는 3월 8일 치러지게 될 국민의힘의 전당대회는 여러모로 대한민국 정당사에 길이 남을 전당대회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윤심 마케팅'부터 '나경원 주저앉히기' 등과 같은 논란들 때문만은 아니다. 보수정당이 '당심 100%'로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한 것은, '유승민 찍어내기' 논란과 별개로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당원들의 투표만으로 지도부를 선출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정의당·진보당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진성당원제'를 토대로 전당대회를 치렀다. 진보정당은 국민의힘이 '책임당원'이라 일컫는 진성당원의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을뿐더러(정의당의 경우 진성당원 수는 2만 명 이내다-기자 말), 이념과 정책 지향성이 분명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채택한 일종의 '당원중심주의'다.

보수정당에선,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당원이 온전히 '주인공'으로 선 역사는 없다. 물론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1997년 창당 후 2003년 4차 전당대회 때까지 각 지구당에서 추천, 선출된 대의원을 중심으로 한 선거인단을 꾸려서 지도부를 선출했다. 당내 구성원으로만 선거를 치른 셈.

하지만 이때 선거인단의 규모는 7000여 명 수준이었다. 게다가 지구당 위원장 혹은 계파 보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조직'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인 선거였다. 즉, 이는 온전한 당심(당원들의 의중)으로 치러진 전당대회는 아니었던 셈이다.

민심 반영해 위기 돌파했던 보수당... 특정인 찍어내려 다시 당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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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4일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새대표로 선출된 다음날 박 신임 대표와 당직자들이 당 현판을 들고 천막 당사까지 걸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보수정당이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민심'을 반영하기 시작한 건,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해 '노풍(노무현 바람)'을 형성하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대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2003년 실시된 제5차 전당대회를 위해 일반당원 50%와 국민 50%을 섞어서 22만 명이 넘는 대규모 선거인단을 꾸렸다. 당원만이 아닌 국민의 여론을 듣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2004년 6차 전당대회 때부터 '당심+민심' 룰은 확고부동해진다. 16대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드러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소위 역풍까지 맞으며 최대 위기를 겪을 때였다. '대의원 투표 50%+여론조사 50%' 룰로 실시된 이 6차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탄생했다. 한나라당은 천막당사를 통해 이미지 쇄신에 나서며 부활에 성공한다.


이렇게 도입된 '당심과 민심의 조화'는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전당대회 규칙으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 2006년 한나라당 제8차 전당대회가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 비율을 7:3으로 조정했고, 바로 직전에 치러진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역시 본선(예비경선: 당원 여론조사 50%+일반 여론조사 50%)에서 당원 투표 7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 비율대로 당 대표를 선출했다.

재밌는 점은, 과거에도 '당심 100%'로 전당대회 규칙을 바꾸려고 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였던 2011년, 친이계는 한나라당 제12차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시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던 박근혜와 그를 위시한 친박계를 견제하기 위해 룰 개정을 시도한다. 명분은 지금과 똑같았다. 당원 규모가 20만 명 정도로 늘어났으니, 굳이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막당사의 아픔을 간직한 당내 여론은 여론조사 폐지에 부정적이었다.

룰 개정에 실패한 친이계는 결국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의 주변 인사, 이른바 윤핵관 중에도 친이계 출신이 여럿이다. 윤심을 받든 이들은, 11년 전 실패를 딛고 전당대회 룰 개정에 성공했다. 그때는 민심의 지지를 받는 박근혜를 견제한 것이었고, 이번에도 당심에서 밀리지만 민심에서 압도적 선호도를 보였던 유승민 전 의원의 선전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준석이 완화한 세대·지역별 격차, 하지만 '추천인 전광훈'이라는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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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당 대표가 2021년 6월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당심 100%로 치러지는 이번 전당대회가 과연 용산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인가? 아직 모른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어떤 정당도 이 정도 규모의 당원만을 대상으로 전당대회를 치러본 적이 없다.

국민의힘의 책임당원 수는 2023년 1월 10일 기준으로 약 84만 명 수준이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인단 명부 작성 기준을 오는 31일로 결정함으로써, 전체 책임당원 수는 이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규 당원 가입이 계속 늘고 있어서, 일각에서는 '100만에 육박할 수도 있다'라는 기대치마저 나온다. 이 중 당비 납부 기준을 충족한 책임당원에 한해 선거인단 명부를 작성한다.

이준석 당 대표를 선출한 지난 2021년 6.11 전당대회의 경우 책임당원은 27만6698명(선거인 수: 32만8532명)이었다. 당시 나경원 전 의원이 6만1077표(40.93%)를 얻어, 당심에서 1위를 했으나 여론조사에서는 28.27%에 그쳤다. 반면 이준석 전 대표는 5만5820표(37.41%)를 획득해 당심에서는 밀렸으나 여론조사에서 58.76%, 과반의 지지를 얻으며 '뒤집기'에 성공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여론조사라는 변수가 사라졌지만, 그때보다 책임당원 규모가 3배 이상 늘었다. 이준석 전 대표가 당선된 이후 약 4개월(2021년 5월 31일~9월 27일) 동안 입당한 당원만 하더라도 26만5952명이다. 이 중 40대 이하가 약 44.4%(11만7959명)나 됐다. 신규 입당 당원의 수도권 비율 역시 42.7%(11만3793명)로, 영남권(28.2%, 7만5033명)을 압도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재임 때부터 쫓겨나듯이 대표직에서 내려온 후에까지 '당원 가입'을 꾸준히 독려해온 점을 미루어 보면, 이 같은 추이가 지속됐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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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기현 의원과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2023년 1월 기준으로 전체 책임당원의 세대·지역·성별이 어떤 비율로 조합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당원 구성과 관련해 상세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월 21일, 기자들에게 "당원 구성 비율만 보더라도 20대·30대·40대가 합쳐서 33%, 영남이 40%, 수도권이 37%다"라며 "누구도 경선 결과를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정 비대위원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난 6.11 전당대회 당시보다 지역별·세대별 격차가 줄어든 것은 맞다. 당시 20~40대까지 책임당원 비율은 약 27%였다. 수도권이 29.6%였던 데 반해 영남권이 55.3%로 차이도 컸다.

그러나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언론에 언급한 내용은 당 조직국에서 만든 자료일 텐데, 그 데이터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캠프에도, 당에도 없다"라며 "'당심 100%' 룰 개정의 명분쌓기용으로 이야기한 건지, 정말로 신뢰할 만한 자료인 건지 명확하지 않다"라고 의심했다.

정 위원장이 이 같은 수치를 알릴 때 책임당원 규모는 약 79만 명가량이었다. 한 달여 사이에 5만 명이나 더 늘어난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사실상 축출된 이후, 그를 지지하는 핵심 지지층의 유입 동력은 약화됐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성향의 시민들이 당의 문을 두드려왔다. 한 영남권 국회의원은 <오마이뉴스>에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정 지지도도 높지 않다 보니, 지역에서 대통령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입당하겠다는 주민들이 꽤 있었다"라며 "현재 책임당원의 세대와 지역 구성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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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통일당 대표 전광훈 목사 전광훈 목사가 지난 2021년 7월 20일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변수는 또 있다. 극우 성향의 지지층을 아우르고 있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측 역시 당원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추천인 전광훈'이라 기재된 입당 원서가 쏟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지난해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16일 한 국민의힘 의원의 입을 빌려 "한 당원협의회에 1000명의 당원가입 서류가 왔는데 그 중 700명이 전광훈 목사 쪽이었다고 했다"라며 "지난해 3·9 대선 이후 전 목사 측이 매일 50명 이상씩 당원으로 가입을 시켰다는 얘기도 있다"라고 보도했다.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너도나도 전당대회 도전 의사를 밝히며, '아스팔트'의 목소리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윤심을 무리하게 반영... 중도층마저 자극"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제라면 (당심 100%)로 제도를 급격하게 바꾼 게 문제이지,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며 "엘리트 중심주의에서 탈피해서 당원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건 본래 좌파 정당에서 주로 보이던 흐름이었으나, 최근에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또 "국민의힘이 당원 투표 100%를 적용하면서 '반윤은 안 된다'라는 기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당원들이 명확히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라며 "국민의힘 당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면서도, '도를 넘는' 것은 싫어한다. 김기현 의원이 최근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도 "지금과 같은 책임당원 규모에서 '당심 100%'로 전당대회를 치르는 것 자체를 무리라고 하기는 어렵다"라며 "문제는 제도의 운영이다. 지나치게 거칠고 자극적인 방법으로 '윤심'을 당에 반영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엄 소장은 "용산의 입장에서는 여러 위기 요인 돌파를 위해서라도 당의 그립을 강하게 쥐고 싶겠지만, 이렇게 무리하면 야당 지지층만이 아니라 중도층과 무당층까지 자극하게 된다"라며 "국민의힘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당의 주인은 당원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정당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집권 정당이라면 국민 포용 정당이 되어야 하고, 국민 포용 정당이 되려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울타리를 쳐놓고 당원들만 바라보는 정치를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겠느냐?"라며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당이 특정 계층, 특정 성향에 경도된다면 어떻게 집권할 수 있겠느냐? 결국 다시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도 꼬집었다.
#전당대회 #국민의힘 #책임당원 #당원투표 #당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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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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