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더니, 잠시 후 느닷없이 동네를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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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염치'
부산에 사는 손녀는 이제 4학년이 된다. 만나면 즐겁고 언제나 보고 싶은 손녀다. 자식들 키울 때 몰랐던 애틋함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봐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언젠가 부산 딸네 집을 찾았다. 손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더니, 잠시 후 느닷없이 동네를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제안에 따라나섰는데, 본인이 다니는 학교와 학원을 차근차근 안내해 준다. 길이 어딘지, 얼마나 걸리는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꼬마들의 선물을 파는 가게였다. 할아버지 덕에 기다리던 선물을 얻어보려는 손녀, 귀여움과 애틋함에 웃고 말았다.
손녀가 이것저것을 고르며 고민을 하는 사이, 주인이 빙긋이 웃는다. 할아버지를 데려온 손녀가 귀여웠던 모양이다. 대략 5000원어치를 고르더니 이만하면 됐단다. 부족한 듯하여 몇 개를 더 고르라 하자, 극구 사양을 하며 자기도 '염치'가 있단다. 염치라니, 깜짝 놀라 물어도 대답이 없다. 집으로 와서야 염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손녀를 만나면 용돈을 넉넉히 줬다. 저축해 놓았다 필요할 때 쓰라며 주는 돈이었다. 만나면 늘 주는 돈이 제법 모인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또 용돈을 줄 텐데 많은 선물을 살 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염치에 대한 손녀의 설명을 듣고 생각도 많이 자랐구나, 느꼈다. 염치도 모르는 어른들을 생각나게 했다. 연말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다시 손녀에게 선물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손녀,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가방을 사 달란다. 지금 있는 것이 오래되었으니 책가방을 사주면 좋겠단다. 연말 선물 겸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방으로 합의한 후, 가방을 사러 가자 하니 엄마와 정해서 알려준단다. 한참이 지난 후 원하는 가방이 무엇인지 전해 들었다. 제법 가격이 나가는 것이었다.
요사이 아이들이 그러려니 하면서 주문을 하고 전화를 했다. '왜 그렇게 비싼 가방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부자라서' 그랬단다. 할아버지가 부자라고? 왜 할아버지가 부자냐는 질문에 '용돈을 많이 주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고 답한다. 용돈은 할아버지 용돈을 줄여서 주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렇지 않단다. 할아버지가 부자니까 늘 많은 용돈을 주는 것이란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얼마나 부자인지 알고 싶단다. 얼마나 부자냐는 손녀의 질문에, 다음에 설명해 준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