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운동> 창간호 표지
이준희
국내에서는 음반 생산이 아직 재개되지 않아 식민지시기 음반이나 외국 음반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재일교포 음반회사 리베라레코드의 한국어 음반 첫 발매 소식은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거기 담긴 내용이 광복의 의미와 기쁨을 담아 새로 만들어진 해방가요라는 데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외경제신보> 1946년 12월 28일자에는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기사가 실려 있다.
<해방의 노래> 재일동포 간에 보급
작곡가 김순남 씨의 가요곡 <해방의 노래>와 <우리의 소래>(<우리의 노래> 오기)는 일본 재류동포까지도 널리 보급되어 많은 찬송을 받고 있다 하며 전기 두 곡을 일본 재류조선인 예술단체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노래를 취입한 녹음판이 요즘 서울중앙방송국에 전해 왔다 한다.
1946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해방가요 발표회에서 연주된 30여 곡 가운데 대다수를 작곡했을 만큼 해방가요 창작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던 김순남은, 해방가요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음악 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음악의 개척자로 평가받을 만큼 1940년대 후반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였다. 하지만 1948년 월북과 이후 북한에서 당한 정치적 숙청 때문에 그의 많은 작품들 중 상당수가 사라져 버렸고, 활동 당시에 녹음되어 지금까지 들을 수 있는 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김순남 작품을 확인할 수 있는 당대 자료는 1949년 10월 북한 국립예술극장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연주된 <피아노 협주곡> 영상 일부, 그리고 리베라레코드에서 1946년에 발매한 해방가요 네 곡이 전부이다. 리베라레코드의 첫 음반은 음반사(史)는 물론 음악사 측면에서도 더없이 소중한 자료인 것이다.
좌익 색채가 짙은 재일조선인연맹 관련 음반회사에서 좌익에다 월북까지 한 음악가 김순남의 해방가요를 제작한 것이라 리베라레코드 음반은 그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를 못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자료 복원이나 좀 더 나아간 조사, 예컨대 리베라레코드의 후속 음반 발매 여부나 관련 인물들에 대한 연구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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