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1주기인 지난 2015년 4월 16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권우성
2018년 방송에서 이런 멘트를 직접 쓰고 읽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성수대교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씨랜드 화재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까지. 우리 사회는 지난 몇십 년간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 같지만, 그다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 안전에 대한 사고였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매번 그때마다 피로 쓰여진 법률 제정과 안전 규칙들. 그렇다면 언제까지 피로 쓰여져야 할까. 우리 사회는 과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학교를 한창 다니던 그 해, 2014년. 세월호가 뒤집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뉴스로 지켜보고, 그 이후 몇 년간 뼈아픈 정쟁으로 이어져 전 국민에게 생채기로 남았던 그 시간을 보면서 저는, 더이상 나라에 관심이 없어져 갔던 것 같아요.
희망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보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이럴 거면 그냥 나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소모적이기만 하고, 공격을 받을 일들만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저를 지배하고 죽은 듯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냥 나만 잘되자. 돈 되는 일만 하면서 살자."
방관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가장 편한 길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던 방송도 긴 휴지기를 갖겠다고 선언하고, 쓰던 글도 그만뒀고.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었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참사 현장에서 살아나오게 됐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상과 사회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어요.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이후로 누구보다 열심히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기대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난 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공청회에 다녀온 이후(관련 기사 :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이상한 희망 같은 게 있었어요. 여당 의원들의 진심 어린 눈빛이 그래도 무언가 달라지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밝은 빛을 봤던 것 같아요. 기대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분명히 약속했었지요, 최선을 다해서 유족분들의 마음과 생존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저는 분명히 트라우마의 유일한 치료 방법은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일 뿐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직접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국정조사 보고서 채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또 한번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이상민 찍어 내리기에 불과한 국정조사 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
제가 '진심'을 느꼈다고 생각한 대표적인 여당 의원이었습니다. 내 앞에서 같이 울었고, 유족들 곁에 와서 위로를 하기도 하던 그 의원이 국정 조사 자체가 모든 책임을 윤석열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사는 이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참사의 원인은 군중밀집 관리 실패였고, 군중밀집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진상 규명의 첫 단계일 뿐인데. 이것을 '이상민 찍어 내리기', '정부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는 프레임'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당리당략이 우선시되는 집단 행동을 목격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안건에 대해서 여야 협치가 어려운 것은 이해해도, 이 참사 만큼에서는 논의가 필요 없는 하나된 태도가 필요했다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야 합치가 이뤄져야 하는 때는,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이에요.
나라에 대해 더욱 관심이 커져갑니다. 공청회 현장이 자꾸 생각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