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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서 박정희 글씨를 보았다

등록 2023.02.03 09:01수정 2023.02.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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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2023년 한국사회에 어떤 존재일까. 군사쿠데타로 집권해 암살로 쓰러진 비운의 독재자. 햇수로만 무려 17년을 재임한 대통령. 한국경제의 도약과 민주주의의 탄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지도자. 그에 대한 향수와 반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고, 그에 대한 추종은 여전히 한국 보수의 심장에 자리한다.

그러나 그것이 박정희가 한국의 오늘에 어디에나 존재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2023년 한국사회에 소환된 인물이 몇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를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안중근이다. 지난해 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이 바로 그의 이야기였고, 역시 지난해 출간돼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김훈의 <하얼빈>도 그의 이야기가 아닌가.

영화와 소설, 가장 보편적인 예술의 형식으로 소환된 안중근이 오늘의 한국인에게 저를 내보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보면, 100년도 더 전에 사망한 그의 쓰임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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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놓인 안중근 동상 ⓒ 김성호

 
오늘의 한국에서 안중근을 만나려면

안중근은 누구인가. 하얼빈 의거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사다. 일본내각 초대 총리로 을사늑약 체결에 역할을 하고, 국권을 박탈당한 조선에 세워진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자다.

안중근은 대한의군참모중장 신분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고, 이를 테러가 아닌 군인 신분의 교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 법정에서 항소를 포기했고 곧장 사형을 당하였다. 조선의 지사로서 일본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뜻에 따른 것이었다. 고작 서른 둘의 나이였다.

오늘의 한국에서 안중근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안중근 의사의 유족들이 유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으나 일본은 끝내 그 시신을 넘겨주지 않았다. 뤼순 감옥 인근 어딘가에 암매장되었을 것이란 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한 사실을 짚어낼 수는 없다. 남한과 북한에서 각기 그 유해를 찾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알알이 이어져 한국의 사내들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란 여덟 글자를 훈련소에서부터 가슴에 새기고 청춘의 이년을 조국에 바친다. 한국 제일의 소설가가 이순신에 이어 안중근의 삶과 사상을 복원하려 하고, 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 마침내 스크린 위로 옮겨지는 데는 이 같은 존중과 존경이 자리한다. 그로부터 또 다른 관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서울 중심부 남산 어귀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꾸준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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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의 전당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놓인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비문 ⓒ 김성호

 
독립투사 기념관 앞 친일파 글씨라니

며칠 전 나는 추운 겨울날 찾은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서 한참을 멈추었다. 그건 이 자리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무엇이 이곳을 찾는 이의 눈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문 앞에 3미터는 족히 될 높이에다 가로로는 그 두 배쯤 되는 거대한 자연석이 누웠는데, 여기 새겨진 글씨가 대통령 박정희의 것이 아닌가 말이다.

'民族正氣의 殿堂(민족정기의 전당)'이라 쓰인 글씨는 소위 '사령관체'로 그 아래에 '1979년 9월 2일 大統領 朴正熙(대통령 박정희)'라 적혀 있었다. 안 의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직접 쓴 글자를 그대로 새긴 것인데, 집권 기간 동안 성웅 이순신을 매개로 국민 통합의 효과를 보았던 정권에서 안중근을 눈여겨 본 것이란 의견이 나올 즈음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박정희 대통령은 그 해를 넘기지 못했고 안중근은 오늘에야 한국사회의 집중조명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박정희의 친필 글씨가 말 그대로 민족정기가 흐르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놓일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경제적 성공의 기반을 닦았다는 공적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독재자란 역사적 평가는 물론이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한 이이력이 독립투사 기념관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 그는 대통령 박정희이기도 했지만 독립군을 뒤쫓던 다카키 마사오이기도 했다.

죽은 독재자에 기대어 제 명을 연장하려 드는 못난 정치인들이 혈세를 들여 기념관을 짓고 기간시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야 오늘의 한국을 돌아보면 막을 수는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익 앞에서 의를 생각하라'는 <논어>의 정신을 첫 계명으로 여기고 살다 간 안중근 의사 앞에 만주국 군관 출신 대통령의 글씨가 서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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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의 전당 박정희 글씨로 새겨진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 비문. ⓒ 김성호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안중근 #박정희 #영웅 #하얼빈 #김작가 여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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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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