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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공고에 왜 산재 현황은 없을까?" 그렇게 시작된 일

[인터뷰]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만든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

등록 2023.02.06 16:43수정 2023.02.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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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으로 매년 1년에 약 2000명이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한다. 산재로 사망하는 탓이다. 그중에 800명은 사고사, 1200명은 산업과 연관된 직업병이나 후유증,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다. 사망사고는 그나마 그 실태가 공개되지만, 나머지 죽음들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기업이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려지는 내용마저도 일부분이다.

이 상황에서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1년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를 살펴봤다.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사이트 바로가기)로 어제와 오늘 누가 노동 현장에서 사망했는지, 그 실태를 모은 것이다(관련 기사: 5년간 노동자가 가장 많이 죽은 기업 공개합니다 https://omn.kr/2220y).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후 1년, 우리 노동 현주소는 어떠했을까. 지난 1월 26일 서울 마포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실에서 김예찬 활동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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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는 2022년 한 해 동안, 최근 5년간 발생한 중대재해 실태를 모았다(출처: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누리집) ⓒ 누리집 화면갈무리

 
-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는 '구인구직 공고에 왜 산업재해 현황은 나오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기업을 홍보하는 정보들은 많지만, 정작 해당 기업이 실제로 어떤 환경을 제공하는지 알리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경향신문> '1748번 죽음의 기록' 기획 기사를 보게 됐다. 끔찍한 사고들이 많이 있음을 접하고, 호기심에 해당 기업을 검색해봤다. 어떤 식으로 사고가 났는지 단순 현황을 볼 수 있었고, '앞으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산업재해 현황 정보를 알리면 어떨까'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주요 내용은 고용노동부 워크넷을 참고했고, 공공상생연대기금에 사업 지원을 신청해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산업재해 정보 공개 실태를 모으게 됐다.
 
어제도 사람이 죽었다. 오늘도 사람이 출근했다가 사망해 퇴근하지 못했다. 매일 뉴스에서 어떤 노동자가 어떻게 죽었다고 전하는 실태를 보면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죽은 기업에서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사람을 뽑는다. '구직자들은 이 사실을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도 이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구직자들이 해당 사업장에 지원하고 있음을 보게 됐다. 아무개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사망하더라도, 그 사업장의 안전이 개선됐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 와중에 구직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망사고가 났던 사업장의 문을 또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재해가 있었던 사업장에 지원하면 누군가 또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구직공고로 채용된다. 구직자가 산업재해 사업장에 채용됐다고 치자. 그 기업에서 산업재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쳐 줄까? 얼마 전에 사망사고가 사업장에 있었으니 앞으로 무얼 조심해야 하는지 말해줄까? 이러한 호기심과 궁금증, 물음에 물음이 이어져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를 2021년 12월에 시작해 2022년 12월까지 진행했다."

"정부, 일반 시민 보기 어렵게 산재 사업장 명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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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는 2022년 한해 1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에 해당하는 산업재해 소식을 모았다. ⓒ 정현환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이 지났다. 산업재해 정보는 그동안 어떻게 공개됐었나?

"지금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 명단을 공표하고 있다. 산재 사망사건 발생 비율이 높은 사업장뿐만 아니라 산재를 은폐하다가 걸린 곳도 알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PDF 파일이나 간략한 표로만 보여주고 있다. 이마저도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해 구직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이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만이라도 누구나 보기 쉽게 정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공개된 산업재해 정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근거로 한다.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됐고, 제13조에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 공표' 조항이 생겨 이전보다 더 자세히 어떤 산업재해가 있었는지 공개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법안 도입 후 지난 1년 동안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산재 관련) 사법적 처벌이 확정되지 않았던 탓으로 보이고,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에도 이전처럼 단순히 '몇 명이 어떤 기업에서 죽었다' 정도만 제공하고 있다. 법은 시행되고 있으나 이전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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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건수 공표목록(출처: 고용노동부 사전정보 공표목록) ⓒ 화면갈무리

 
- 산업재해 현황 정보들을 취합하면서 고민했던 점은?

"이번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가 기존 언론보도 및 정부 기관에서 공개했던 내용과 다른 점은 현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기업의 산업재해 정보를 한 군데에 모아 놓고, 이를 알아보기 쉽게 명시했다는 것이다. 기업정보를 취합하고 공개함에 따라 사실적시 명예훼손 우려가 있었다. 동시에 해당 기업으로부터 '업무방해죄에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고소는 없었다. 프로젝트를 준비 단계에서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자문을 변호사에게 받았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 하에 진행했다. 이 점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염두에 뒀다."

- 프로젝트를 혼자서 했나? 함께하거나 도움을 준 이가 있다면.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에 뼈대가 되는 정보를 제공했던 건 '노동건강연대'다. 이곳은 지난 20여 년 동안, 민주노총과 함께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해 시상했다. 여기에 노동 관련 꾸준히 보도한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측 도움도 받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노조위원장 출신인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노동운동가였던 강은미, 이은주 정의당 두 국회의원실에서 도움을 줬다."  

-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공개된 기업 이름이 비슷비슷해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이름은 같은데 한쪽이 주식회사인 곳도 있었고, 반대로 아닌 곳도 있었다. '애먼 기업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년 약 2000명이 노동현장에서 사망한다. 이마저도 재판과정에서 사업주 책임이 크다는 사실이 드러나 외부에 알려진 실태다.

사망자 중 800여 명은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는 등의 사고였는데, 건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람이 죽는다. 나머지 1200여 명은 화학물질을 다루다가 희귀병이나 암이 생겨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경우다. 하지만 '2000'이라는 숫자는 전체를 반영하는 수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본인이 산업재해로 죽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개된 내용만을 토대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품이 많이 들었다."

"원청 기업의 산재 정보 공개, 정부가 감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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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는 지난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로 매년 2천 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실태를 공개했다(출처: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누리집) ⓒ 누리집 화면갈무리

 
-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후 1년, 앞으로 무엇을 더 바꿔야 할까?

"현재도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지만, 유족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이 사고가 언제 어떻게 일어났고, 무엇 때문에 노동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는지 조사한 결과를 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처음에 경찰이 출동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여부를 확인한다. 그다음부터는 '특별사법경찰관'이라고 불리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나와서 수사를 진행한다. 이 감독관들은 '중대재해 조사보고서'를 쓰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업주와 사건 당시 동료의 의견이 상당히 많이 반영된 문서가 작성된다.
 
이 관행과 절차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사망했는데 어떤 사업주가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까? 내일도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방금 사망한 동료의 죽음을 어떤 외압과 불이익을 받지 않고 제대로 진술할 수 있을까? 이런 과정에서 유족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이 사망에 대해서 사업주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이런 것들을 아예 알 수가 없다.
 
이후 만약에 검찰에서 불기소된다면? 실제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유족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일반적인 교통사고만 해도 물적 증거가 다 남아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산업재해는 그 근거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남아 있더라도 유족이 하나하나 다 입증해야 한다. 나중에 유족이 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다시 조사하려고 해도 하기가 힘들다. 더욱이 유족이라는 개인이 상대하는 건 대부분 대기업이다. 전문적인 법무팀과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기업을 대상으로 유족이 산업재해 인과관계를 증명한다? 이런 너무 어려운 일이다. 산업재해와 관련된 시민의 알 권리과 이와 관련한 제도들이 굉장히 부실한 실정인데, 이번 프로젝트가 조금이나마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밀알이 됐으면 한다."

-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원청 기업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청에서 하청으로 다시 재하청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려 원청이 어떻게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인가를 꼬집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 구직자들이 취업 과정에서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정리해 공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로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매년 20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가장 큰 책임이 원청 기업에 있지만, 정작 우리 기업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미봉책을 내놓는 데 그친다. 최소한의 수단과 조치만 해놓고 그 역할을 다했다고 말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기업들이 이 법을 바라보는 시각과 조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앞으로는 원청 기업이 지금보다 더 많이 산업재해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관할 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이를 사전에 관리 감독해야 한다.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정보공개센터에서 나설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 기업들은 안전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를 묻고 싶다. 이번 프로젝트에 '안전 관리 비용'을 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업 재무 정보에 '안전 비용'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노동자 안전에 그동안 얼마나 지출했는지, 몇 명의 인력이 투입됐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게 지금 우리의 노동 현실이다. 시민단체 노력만으로 계속해서 이런 정보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노동 분야 관련 다양한 연구원들과 만났는데,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산업재해 관련 기준을 만들고 점수를 매기고 싶은데 그동안 우리 사회가 그럴 수 있는 기준과 척도를 만들지 않아서 하지 못했다는 게 실제로 만난 관련 연구자들 입장이었다.

안전 관리 및 투자 등과 관련 기업들의 태도도 문제지만, 정부에서 먼저 파악해 이를 시민에게 공개하려는 움직임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지 1년이 된 지금,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보공개센터에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예정이다."
#정보공개센터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노동 #산업재해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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