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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붕년 교수님이 주신 육아팁, 또 망했습니다

연민의 대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데 왜 자꾸 치밀어 오를까요

등록 2023.02.06 16:07수정 2023.02.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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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아이와 함께 보내고 있다. 거실의 큰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거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할 때도 있고, 간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그런 시간이 한 달쯤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의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은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불편한 감정이 깃드는 것 같다.


방학이 시작될 때만 해도 학기 중에 못다 한 이야기와 경험들을 함께 나누며 보낼 방학을 기대했을 텐데 말이다. 불만의 근원은 아이의 학습에 대한 나의 높은 기대치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다. 

학습지나 학원숙제를 대충 하거나 미루는 눈치면 가자미 눈이 되어 잘못을 낱낱이 꼽고 아이를 채근한다. 또 휴대폰이나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한 경계심도 높다. 아직은 아이를 포노사피엔스 대열에 세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답답할 것이다. 방학이라고 딱히 나아진 것도 없이 떠밀리듯 숙제하고, 옆에 있는 엄마의 감사 아닌 감시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자유로이 폰과 노트북을 사용하는 엄마가 못마땅하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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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붕년 교수는 경구처럼 외우는 문장이 있다고 소개한 유퀴즈 온 더 블록 프로그램 화면 캡처 ⓒ tvn

 
얼마 전 김붕년 교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김붕년 교수는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로서 자폐스팩트럼 치료 권위자며, 자녀교육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하기도 한다. 

인터뷰 내용은 <사춘기 자녀 대하는 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춘기의 뇌는 큰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여자아이의 경우 보통 초6에서 중2까지, 남자아이의 경우 중1부터 고2까지가 해당된다. 이 시기는 전두엽의 가지치기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기라고 한다.

문제는 전두엽이 외부 자극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기관인데 이 기관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편도핵을 자극해 불안, 분노, 공포가 커지게 되는 시기라고 한다. 요컨대 전두엽의 조절 능력은 떨어지고 예민성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또래 친구들과의 자극은 이런 상황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김붕년 교수는 '연민'이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과한 통제나 격렬한 대치는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고 단절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이다.

'감정의 파도에 아이도 힘들겠구나' 하는 이해를 바탕으로 자녀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지적은 후순위로 두자는 것이다. 교수는 아이가 방문을 '쾅' 하고 닫고 들어가더라도 잠시 여유를 둘 것을 제안한다. 부모들은 아이 버릇 나빠진다며 더 엄격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말이다.

김붕년 교수는 경구처럼 외우는 문장이 있다고 한다. '당신 자녀를 나와 아내에게 온 귀한 손님처럼 여겨라'는 글귀가 그것인데, 늘 마음에 담고 외고 있다고 한다. 아이와 귀한 손님은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그러할까? 귀한 손님을 맞는 우리 모습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귀한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손님 입장에서 손님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손님은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개별자로서 존중해야 하는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손님은 언젠가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이 귀한 손님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곱씹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터뷰를 보는 내내 지난날 내 말투와 행동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고, 아이가 받았을 상처에 마음이 쓰였다. 이대로 가다간 관계가 틀어지리라는 두려움도 솟아났다. 메모장에 '연민', '귀한 손님'이라는 키워드를 기록해 두었고, 조언대로 해보겠노라 다짐했다. 그것이 일주일 전 일이다.

그런 나였지만 오늘 아이의 꼼꼼하지 못한 행동에 또 버럭 화를 내고 다그치고 말았다. 화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움츠러들었던 아이의 모습, 시무룩한 표정이 다시 떠오르니 마음이 쓰라리다.

그냥 두면 버릇 나빠질까 봐 혹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엇나갈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부모로서 혼란스럽다. 의식적으로 내 생각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낼 모습이 그려져 마음을 쓸어내린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인지 스스로 묻는다. 어느새 엄격하고 무서운 엄마,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로 자리매김 한건 아닌지. 그 모습이 내가 원한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아이를 둘러싼 상황과 사춘기 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면 아이에게 화를 내는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제 곧 자신의 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갈 아이인데 그걸 못 참을까 싶지만 그 상황에 매몰되면 또 쉽지가 않다.

그게 쉽다면 그렇게 많은 부모들이 사춘기 아이와 관계를 두고 고민을 토로할까 싶기도 하다. '연민'과 '귀한 손님'이라는 키워드를 다시금 마음깊이 되새겨 본다. 너무 늦은 앎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다.
#사춘기 #부모 #관계 #소통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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