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선생님, 지난 5일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생존자 발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선 자리지만, 도착하자마자 숨이 가빴어요.
희생자들의 영정사진과 이름들이 모셔져 있는 광경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슬픔이 닥쳐왔고, 수없이 많은 취재진의 숫자에 압도당해 시작부터 힘들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2차 공청회 때처럼 국회의원들 앞에서 발언하는 건 줄 알았는데, 국화꽃을 받기엔 너무 어린, 밝게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들의 사진 앞에 무너졌습니다. 역시나 국회의원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겁니다. 나를 약하게 하고 울게 만드는 건, 오로지 희생자와 유가족이었습니다.
내게 '잊으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한 차례 주저앉고 다시 정신을 차려 어찌저찌 발언하고 나왔더니 이번엔 나를 안고 한 희생자의 어머님이 말하셨습니다.
"용기내줘서 고마워요. 나는 초롱씨가 다 잊고 행복하고 밝게만 살아줬으면 좋겠어. 다 잊고, 잘 살아줘요. 행복하게만, 응? 그러면 난 정말 바랄 게 없네. 이 이야기 꼭 해주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진상 규명도, 그냥 우리가 다 할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이제 더 울지 말고 씩씩하게 잘 살아줘요. 너무 큰 짐은 다 버려두고, 앞으로는 웃고 살 일만 걱정했으면 좋겠네. 그간은 용기 내주길 바랐는데 오늘 보니 못 할 짓이다 싶어. 그냥 젊은 친구들은 원래 살던 대로 밝고 밝게 사는 게 그게 우리를 위한 것 같아.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게 '잊으라'고 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잊으라고 말해도 되는 유일한 사람은 유가족밖에 없습니다. 잊어달라는 요청이 이렇게도 슬프고 위로가 된다니, 도대체 어떤 슬픔이 나와 그들에게 존재하는지. 우리가 갖고 있는 연대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그건 우리만 알겠지요.
내가 밝게 사는 게, 평범하게 웃고 지내는 게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웃으며 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들의 잊어달란 요청은 고이 접어두고 사는 동안 내내 기억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등장해 이태원 참사 유족을 위한 노래를 부를 때,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너와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슬피 울었습니다. 당리당략도 없었고, 정쟁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래야 했습니다. 이런 공적 추모가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사는 동안 절대 끝나지 않을 그들의 이야기, 네버엔딩 스토리로, 노란 리본이 빨간 머플러를 위로합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백발의 아버지가 노란 리본을 붙들고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합창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다 되어도 저들의 슬픔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노란 리본의 슬픔이 빨간 머플러의 현재 슬픔을 위로하는 것을 보며 정말 '끝나지 않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잊으란 말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슬픔에 과연 '치유'라는 게 있을까요.
적극적으로 먼저 무언갈 하며 도울 수는 없지만, 방관자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치유는 없지만, 위로와 연대는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유가족 분들이 저의 글을 모두 다 챙겨보셨다며, '앞으로 계속 글을 써주세요'라고 말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픔에 공감해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글쓰기뿐이니, 저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과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정말 그럴까요.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이뤄져 가기를 바라며 네버엔딩 스토리를 그려보려 합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변화를 목격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