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가나다라마바사.
오마이뉴스
수석 교사인 나는 수업 컨설팅과 저경력 교사 멘토링 등 할 일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지난해 가장 뿌듯했던 것은 2년 동안 OO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일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아이는 본인 이름만 겨우 쓰고, 그것도 순서 없이 '그리는' 수준이었다. 어휘도 또래 친구에 비해 아는 게 많이 없어 갈 길이 까마득했다.
1학년 4월에 만나 방학 빼고 8개월 동안 가르쳐 겨우 글을 깨치긴 했지만 2학년 공부를 따라갈 만큼의 실력에 미치지 못했다. 낱말을 연결해서 유창하게 읽지 못하고 짧은 문장인데도 내용을 물으면 대답을 못 했다.
글만 읽을 줄 안다고 그대로 두면 뒤처질 게 뻔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또래 틈에서 위축돼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시간을 무슨 생각으로 보내는지 안쓰러웠다. 그래서 한 해 더 가르쳤다.
지난해 3월 마지막 주에 그 아이를 불렀다. 학년말 방학 동안 뭘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말하니 기특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 마치고 하면 좋겠지만, 그 시간대엔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에 가느라 일정이 바빠 빼먹는 날이 많을 듯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세 번 아침 시간에 공부를 하기로 했다.
"하기 싫으면 그렇다고 말해도 돼"
1학년(2021년) 때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을 만났었다. 하루는 올 시간이 지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담임에게 전화했더니 보냈다고 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복도에서 누군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계단에서 뭐 하냐?" 묻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 봤더니 그 아이는 한쪽 구석에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교실에 데리고 와 의자에 앉히며 "공부하기 싫었구나. 그래서 복도에 있었어?"라고 물었다. 아이는 눈만 끔뻑끔뻑했다. 다시 "하기 싫으면 그렇다고 말해도 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아차 싶었다. 아이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아침마다 오라고 했으니 얼마나 싫었을까?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는데 자기만 한글을 공부한다고 다른 교실로 가야 하니 힘들기도 했겠다.
실은 나는 나대로 시작할 때 목표(유창하게 읽기)에 차질이 생겨 답답하고 조급했다. 또 근무지 4년 만기로 학교를 옮길지도 몰라 이래저래 걱정이었다. 2학년 때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일대일로 지도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어 어떻게든 책임지고 싶었다.
무엇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신을 공부 못하는 아이라 스스로 낙인찍고, 상처받을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욕심을 부린다고 빨리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겨우 여덟 살 된 아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욕심껏 앞만 보고 달렸다. 그제서야 아이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