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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판을 깨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화 시리즈 ③] 북미수교와 EU의 협상 참여, 시민사회 역할 강화하자

등록 2023.02.11 13:18수정 2023.02.1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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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북핵수석대표가 지난 2일 미국 워싱턴에서 대면 협의를 하고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고 외교부가 6일 밝혔다. 사진은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악수하며 기념 촬영하는 모습. ⓒ 연합뉴스

 
지난 30년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현시점에서 실패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없이 남도, 북도,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도, 불가하다. 필자는 [한반도 비핵화 시리즈]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악순환을 거듭한 이유와 한국의 핵보유가 평화를 가져다주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관련하여 이 글은 [한반도 비핵화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다만 짧은 칼럼으로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모두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지난 30년의 비핵화 노력에서 얻은 교훈을 기반으로 세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도록 하겠다.

한반도 비핵화 정세의 현실과 교훈

먼저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정리할 것들이 있다.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하고 기존의 교훈을 수렴함으로써 우리의 목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북한은 핵무장에 성공했다. 핵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보유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그 사실을 부정하며 대안을 모색할 수는 없다. 북한이 핵무장에 성공한 상황에서 무력을 통한 비핵화도, 한국의 핵보유를 통한 공포의 균형도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관련 기사 : '핵보유 한국'을 향한, 미국 핵전문가의 단언) 무력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가 불가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제사회의 핵비확산규범 선두에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로, 현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체제안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는 핵무장국이 핵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핵개발 명분으로 삼거나 핵개발 과정에서 우려를 표명하는 것 중 하나가 안보 문제"라며 "북한이 더 이상 핵을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수준까지의 내용을 담아서 북한에 제시할 계획"임을 시사한 바 있다.(2022.7.22) 우리는 북한의 체제안전과 비핵화를 교환해야 한다.

세 번째로, 대북제재만으로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렵다. 2016년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한 후, 국제사회는 북한에 강력한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을 봉쇄한 상황에서도 3년을 버텨내고 있다. 그만큼 북한의 체제 내구력이 강하다는 반증이다. 북한이 언젠가 붕괴될 것이란 기대는 이미 실패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결과적으로 비핵화의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대북제재는 비핵화의 도구일 뿐 목표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결국 협상을 통해 진전되어야 한다.


이제 앞서 논의한 한반도 정세 판단에 근거해서 기존의 비핵화 방식과 다른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이 글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전반을 아우르지는 못한다. 다만 기존의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논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 번째, 북미관계 정상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비핵화의 조건으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안전을 위해 북미수교와 핵무장을 저울질해 왔다. 북한은 미국만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음을 알고 오래전부터 수교를 열망해 왔다. 그렇지 못할 경우 핵을 통해 스스로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부터 6자회담과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까지 줄기차게 북미관계 정상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미온적이었다. 결국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핵무장을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외길로 들어섰다.

북미관계의 정상화는 한반도에서 냉전을 해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과제이다. 1990년대 초반 냉전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소련,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반면, 북한은 미국, 일본과 수교에 실패하였고 한반도는 탈냉전 시대의 냉전지대로 남게 되었다.

이제 미국도 북한의 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국도 더 이상 '전략적 인내'를 발휘할 여유가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고도화·소형화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투사거리를 미대륙으로 확장하려 한다. 이제 미국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북미관계 정상화의 로드맵을 고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중전략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EU를 활용하자

지난 30년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남북과 북미, 그리고 6자회담의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몇몇 합의를 도출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상호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각각의 합의들은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최근 남북, 북미 간 대화가 실종되고 미중전략경쟁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비핵화 협상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실효적인 논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관련하여 필자는 양측의 긴장과 불신을 조율하고 협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제3의 행위자, 구체적으로 유럽연합(EU)의 참여를 제안한다.

EU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조율하고 관리할 적임자이다. 과거 EU는 북한과 가장 오랫동안 안정적인 정치회담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북한과 EU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구체화되기 전인 2015년까지 14차례의 EU-북한 정치대화를 지속하였다. 이 정치대화에서 북한이 불편해하는 인권문제가 논의됐을 정도로 북한은 서방 강대국(연합) 중 EU를 유독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EU는 또한 2013년에 체결된 이란 핵합의, 즉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논의를 주도하고 현재 이 합의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 협상자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EU가 갖는 지위와 핵협상의 경험을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활용할 수 있다. EU 또한 수 차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역할을 담당할 의사를 표명해 왔다.

관련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과 미중, 그리고 EU가 포함된 협상테이블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국제 비정부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한반도 비핵화는 남과 북, 그리고 동북아와 전세계 평화를 위한 과제이다. 이는 단순히 국가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우리 민족, 동포와 세계인이 함께할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 논의는 정부 단위의 배타적 협상 틀에서 다루어졌을 뿐 비정부 영역의 역할은 제한되어 왔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단위의 한반도 비핵화 논의는 비핵화 논의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맹구조와 국내 정치, 즉 정권교체에 따른 분절화된 협상전략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이 대화가 실종된 냉각기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비정부 영역의 역할, 특히 시민사회의 역할이 강화되고 국가 또한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한반도 비핵화, 이를 넘어선 한반도 분단체제의 해체는 정치적 협상만으로 이행되지 않는다. 이는 남과 북, 미국과 북한이 사회문화교류를 지속하며 상호 간 신뢰를 쌓아갈 때 가능하다. 분명 북한체제의 폐쇄성과 억압성은 이러한 교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 또한 북한 방문과 교류를 막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정부 간 대화가 중단된 지금, 시민사회와 국제사회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재개하고 교류를 확대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가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북한은 여전히 국경을 봉쇄하고 최소한의 물자교류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시대의 기술발전은 머지않은 미래에 북한 주민을 디지털 공간에서 대면할 때를 앞당길 것이다. 탈북민들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북한의 국경봉쇄를 뚫고 가족들과 연결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련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 비정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핵감축을 위한 의원 네트워크(PNND, Parliamentary Network for Nuclear Disarmament)와 같은 국제 의원 네트워크나, 국제 종교 네트워크,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연대해 온 국제사회의 다양한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함께 할 수 있다. 앞으로 진행될 정부 간 협상에서 각국의 시민사회와 국제사회가 의견을 제출하고 전문가들이 자문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무기로, 핵무장으로 잠시간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협력하지 않는 한 그 평화는 오래갈 수 없다. 우리 모두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가 되어 행동하자. 평화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만들고 지켜야 할 생명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평양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북한 #북미수교 #EU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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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mail: 4025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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