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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님, 나도 아파요" 하는 산의 호소, 들리지 않나

10여 년 운동하러 다니는 산... 난도질하듯 훼손하지 않았으면

등록 2023.02.12 20:22수정 2023.02.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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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입춘이 지나며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어릴 때는 '한창 추운 2월 초에 웬 입춘? 도대체 옛날 사람들은 절기를 어떻게 정한 거야?' 라며 절기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언제부터인가 입춘이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아직은 춥지만 입춘이 지나면 추위의 결이 달라지면서 이제 봄이 오겠다는 기대와 함께 선인들의 지혜로 여기며 절기를 공감하게 됐다.  

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도 말끔하게 가신 상쾌한 주말 이른 아침 동네 앞산을 올랐다. 체력단련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열심히 운동한다. 요가, 헬스, 필라테스를 하거나 가볍게는 걷기나 등산, 공원의 기구운동 등 나름대로 자기관리를 하며 신체나이를 젊게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참 좋은 현상이다.   

반면 희한하게도, 불편한 건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산 입구에 화장실이 있는데도 이 작은 산 정상에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 정자를 더 지어달라, 운동기구를 더 설치해달라는 등 이런저런 요구를 하며 마치 자기 집 거실처럼 편하게 운동을 하려 한다.  

행정기관은 한술 더 뜬다. 해마다 뭔가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지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으로 아직은 쓸만한 여기저기를 손보느라 분주하다.  


체력단련장 옆 왔다 갔다 하며 걷기운동 하기 좋은, 산에서는 흔치 않은 평평한 오솔길 구간에 굳이 두툼한 야자 매트를 깔아 주민들이 오히려 걷기에 불편하다며 치워달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정상의 멀쩡한 팔각정을 부수고 엄청난 예산을 들여 다시 짓는다는 소문에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진정서라도 내려 했는데 이행 과정에서 팔각정을 전면 수리하고 전망대를 다시 꾸미는 정도로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십년 가까이 매일 아침 산에서 운동하던 자리에 서서 오랜만에 운동을 하며 내려다보니 나뭇잎이 떨어져 줄기만 남은 사이로 데크 길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인간님, 나도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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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처럼 지그재그로 난 산 속의 데크길 ⓒ 홍미식

 
그 데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얼마나 미음이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그 작은 산에 나무 바닥 길을 길게 내려니 억지 춘향 지그재그로 나무가 잘려 나간 자리를 보면 마치 산이 "인간님, 나도 아파요. 제발 적당히들 합시다"라고 절규하는 것 같아 인간의 이기심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산에게 사과했었다.     

글쎄, 장애인들도 훨체어를 타고 마음껏 산을 오르게 하기 위한 취지였다던가? 하지만 휠체어를 밀고 그 길을 도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의도라면 저렇게 난도질하듯 마구잡이로 하지 않고 산을 지키면서 입구 가까운 쪽 경사가 완만한 공간을 활용하며 자연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접근성도 좋고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나마 어르신들이 그 길을 걷는 것을 보며 위안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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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허리를 휘감은 데크길(굵은 빨간선) ⓒ 홍미식

 
나는 자연주의자다. 또한 자연은 가꾸려 하지 말고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보존하여 잘 사용하다가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자연보호라는 지론이다.   

그저 인간의 편의만 생각하여 자꾸 손 대다 보면 그 편리성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역풍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는 등 여러 현상으로 아프게 체득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과 자연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서로 균형을 이루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가장 바람직한 일, 자연은 우리가 사는 동안 아끼며 잘 빌려 쓰다가 다시 돌려주어야 할 우리의 엄중한 과제다.     

그래도 점점 당장의 편함보다 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다행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산을 청소하고 음식을 먹고 난 쓰레기는 되가져간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언제 어느 때 올라도 쓰레기가 없는 깨끗한 산을 보면 흐뭇하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모여 세상이 바뀔 것이다. 언제나 말끔한 산을 보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읽는다.
#자연보호 #인간과 자연의 공조 #데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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